탈북 시인 첫 국내문단 데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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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스러운 이 사회에서 서정시를 통해 나의 정체성을 찾아보고 싶습니다."

탈북자로는 처음으로 한국 문단에 데뷔하는 김성민(金聖玟.41)씨의 각오다. 그는 최근 계간 문예지 '자유문학' 여름호에 '촌놈 주제' 등 10편의 시를 실었다. 또 북한에 살 때 문학잡지 '조선문학'에 실었던 '노래를 부른다' 등 시 2편도 함께 수록했다.

그는 "남한에서 시인은 배고푼 직업이라며 다른 형식의 글을 쓰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충고도 있었지만 결국 시를 사랑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시 쓰기를 포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金씨는 북한의 작가양성 교육기관인 김형직사범대학 작가양성반(3년제)을 졸업한 뒤 인민군 제212부대 선전대 작가로 활동하다가 1999년 2월 남한으로 귀순했다.

북한 작가동맹 중앙위 초대 시분과위원장과 김일성종합대학 조선어문학부 교수 등을 지낸 아버지 김순석(74년 작고)씨는 8.15 해방 이후 북한 시단을 이끌었던 대표적인 서정시인이었다.

金씨는 남한에서 작가로 입문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고 말했다.

"제 실력이 부족해 그랬는지 한국 문단의 턱이 그렇게 높아 보일 수가 없었어요. 북한 작가를 인정해 주려 하지 않는 풍토도 있었고요. 매년 신춘문예에 응모했지만 떨어졌습니다."

그는 향후 자신이 쓰게 될 시의 주제와 관련, "아마 나의 시는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시가 될 것이다. 내가 태어나고 내 생애의 절반 이상을 살아온 북한에서의 삶이 담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 사람들의 삶 전체가 슬프니까 시 자체가 슬플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떠나던 나를 위해/아무도 울어준 이 없는 곳이 고향입니다/하지만 그곳은 나서 첫 걸음 익힌 곳/ 못다한 나의 사랑일지 모릅니다'(金씨의 시 '고백'중 일부).

金씨는 중앙대 예술대학원에 재학 중이다.

하재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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