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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동네」선입견 크게 잘못 됐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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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이문구<소설가>】사사로운 견해에 불과하지만 지난번의 12대 총선은 임기만료에 의한 의례적인 통과행사로 치러진것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실로 오랜만에 보통선거의 실제를 스스로 누릴 수 있었던 주권재민의 현실화 과정이었다는데에 한결 의의가 있지 않았던가 한다.
그것은 선거결과와 더불어 득의만면한 표정을 아무데서나 흔히 볼 수 있었던 사실로써 우선 장담을 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선거를 마치기까지 세상의 이목을 모았던 온갖소문과 소식과 소행들, 그리고 그에 따른 여러심증과 방증과 물증들은 어두운 과거를 남긴 전화 전철에 비추어 함께 공론을 일으킴이 마땅하였다.
지난번 선거운동기간의 화제 가운데에는 모호한 대상도 없지 않았으니 예컨대 걸핏하면 도매급으로 모개흥정이 되었던 이른바 달동네의 구설수가 그러하다.
경제도시의 응달인 달동네가 전시행정마저 미치지 않아 고급주택가나 중산층 아파트지역에 비해 생활환경의 낙후성이 두드러지기 시작한 것은 오히려 조국근대화라는 정책적인 구호가 일반화됨과 아울러 진행된 것이었다.
주민들은 일터가 여의치 않아 GNP의 성장과 무관한 처지가 되었고 한 번지 안에 늘비한 삼간두옥마다 아파트화 하여 8도출신들로 통반을 이루었으며 조밀한 인구밀도에서 나온 복잡한 민원이 결국 숙원화하는 것도 지역적인 한 특징으로 지적되기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이런 등외지에도 모처럼 각광을 받을 기회가 있었다. 선거운동이 가열되자 혹은 지역사회의 해결사로 자처하고, 혹은 정치인이기보다 지역사업가임을 내세우는「외계인」들의 반짝걸음과 동시에 당일치기의 정기가 일게된 것이었다. 들으니「정부의 정책에 소외된 불만」과「당장 먹고살기가 급한 특수성」때문에 여야가 나란히「취약지구」로 짐작하여 「집중공략」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러한 풍경들은 자연히 몇 가지의 의문을 자아내게 하였다.
먼저 선거운동에 컴퓨터를 응용하여 지역구민들의 성향을 관리하는 소위「첨단작전」이 현대적인 성능을 떨치는 터에 어찌하여 원시적인 매표공작을 여전히 경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하는 것이다.
온고지신의 정신으로 계승·발전시켜야 할 전통과 민속문화는 아니지만 구태의연의 위력과 효혐에 대한 미신이 그만큼 뿌리 깊은 까닭인가?
구태의연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나라일에 나서는 정책공약보다 동네일을 보겠다는 지역사업 공약에 더욱 언성을 높인 것이 그러하고, 정치인으로서 정치력을 평가하기보다 관서의 행정력을 선양하여 행정이 정치인양 오도하기에 애쓴 자세도 그러하였다.
다음은 고도성장으로 잘살게 되었다고 해온지가 벌써 언제인데 일찍이 서울공화국이란 말까지 들어온 서울에서 어찌되어 끼니거리용 쌀표가 말없이 오가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가난구제는 나라도 못한다」는 속담의 시효가 남아서인가 아니면 그 동안의 대민홍보가 그토록 부실했다는 뜻인가?
의문은 뒤를 잇는다. 달동네에 대한 제3자의 선입관에 오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무비판적으로 유통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달동네는 과연 상대적으로 교육 수준과 지식수준과 생활수준이 낮은 곳인가?
그런 까닭에 선심과 물량공세가「가장 잘 먹혀들어」취약지구 또는 정책지구로 내정하고 집중적인「공략」의 대상이 되는 일방 탈법·편법·위법선거의 온상이라도 된 듯한 인상을 주어도 무방한 것인가? 또 그것이 불특정 다수인에 관한 사항이므로 주민들의 자존심이나 명예는 고려하지 않아도 괜찮은 것인가?
선거라는 이름의 잔치는 끝났다. 상을 치우고 차일과 멍석을 걷으니 마당에 쓰레기는 남았으나 자유민주주의는「소수정예의 주지주의적 논리로 유지되는 관념의 허상이 아니라, 대중적 참여주의에 의하여 실천되는 엄연한 허상이라는 것이 다시 입증되었다. 선거기간에 회오리쳤던 열풍도 열풍 이전에 민풍이었으며 민풍이 곧 춘풍임도 아울러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앞에 제시한 의문까지 해명이 된 것은 아니다. 선거 전날 달동네의 백정을 머릿기사로 내었던 신문들은 선거 이튿날 표가 나온것이 고급주택가나 중산층아파트나 달동네나 차이가 없는 점에 주의를 하였지만 그것으로 달동네의 구설수가 말끔히 씻긴 것이 아니겠다.
그것도 잔치마당을 걷고 나면 일말의 공허감이 빈터에 괴는 것과 같은, 그런 섭섭함 정도로 여기면 그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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