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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인 싫지만, 수도권 단일화 안 하는 안철수도 나쁘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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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3호 4 면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대표(왼쪽)가 2일 광주공원에서 후보 지원 활동을 벌였다(왼쪽 사진). 국민의당 안철수 공동대표는 전남 목포에서 박지원 후보 지지연설을 했다. 두 사람은 “국민의당은 야권 분열을 촉진하는 세력”(김 대표), “더민주는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에 겁먹어 (총선에서) 이길 생각도 못한다”(안 대표)고 서로를 비판했다. [뉴시스]

더불어민주당이 위기다. 적어도 호남 지역에선 ‘벼랑 끝에 섰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겉으론 호남 지역구 의석 28석 가운데 15~20석을 목표로 내걸었다. 하지만 2일 현재 여론조사 결과가 공개된 18곳 중 더민주가 앞서 있는 곳은 8곳 정도고 이마저도 오차범위 내 접전지역이 많다. 반면 국민의당은 더민주보다 많은 ‘20석 이상’을 목표로 내걸었다. 과거 호남은 제1야당의 아성이었다. 민주화 이후 처음 치러진 1988년 13대 총선에서 평화민주당이 호남을 거의 싹쓸이(37석 중 36석)하면서 시작된 제1야당의 독점구도가 계속 유지돼 왔다. “28년 만에 독점구도가 깨질 수 있다”는 수준을 넘어 더민주의 참패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김종인 더민주 대표가 지난달 26일에 이어 1~2일 일주일 새 두 번씩이나 호남을 찾은 이유다. 더민주 위기의 진원지는 ‘호남의 심장’ 광주다. 지역구 8석 중 국민의당 권은희 후보와 맞붙은 광산을의 이용섭 후보를 빼면 모두 고전 중이라는 얘기가 당내에서도 나온다. 그래서 “아무리 민주당(더민주)을 욕하다가도 투표장에 들어서면 2번 아닌 다른 번호는 손 떨려서 못 찍는다”는 ‘호남의 관성’에 기대를 걸어야 한다는 자조 섞인 얘기까지 나온다. 중앙SUNDAY가 3월 30일부터 3박4일간 광주 현장에서 민심을 들었다.

“비례대표 2번 받는 것 보고 깜짝 놀라”더민주의 위기는 광주의 ‘반문재인’ 정서에서 시작된다. 문재인 전 대표 측에선 “지난해 2월 전당대회가 친노 대 비노의 구도로 치러지면서 호남의 정치인들이 없는 말을 지어내가며 반문재인 감정을 부채질했다”고 억울해하지만 문 전 대표에 대한 광주의 민심은 실제로 싸늘하기 짝이 없었다.


“문재인이는 문제가 있는 사람이제. 청와대 있을 때부터 호남 사람들 승진도 못하게 하고 그라고(그렇게) 호남을 홀대하드만 이제사(이제야) 지가 아쉬운게 호남 호남 그라는 거 꼴보기 싫어요.” 광주송정역 앞에서 만난 택시기사 조모(59)씨의 말이다.


‘아직도 용서가 잘 안 되느냐’라는 질문엔 “당연히 용서 못하제”라는 답이 돌아왔다. 함께 있던 다른 택시기사도 “문재인이가 사람은 좋아요. 좋은디… 이미 대선 때도 지지해줄 만큼 해줬고 인자 여그서 문재인은 끝났어요”라면서 거들었다.


문 전 대표가 광주를 포함한 호남 지역 유세 지원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 전 대표 측은 “요청이 있다면 어디든 언제든 간다. 못 갈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지역의 더민주 후보들은 손을 내젓는다. 한 후보는 “중앙당에 기대지 않고 바닥에서 발로 뛰는 게 낫다. 문 전 대표가 오시면 큰일 난다”고 했고, 또 다른 후보도 “여기에 오시면 안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김종인 대표를 바라보는 광주의 여론도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았다. 국민의당 등 상대당 후보들이 김 대표의 국보위 참여 전력을 계속 문제 삼고 있는 데다 친노계와 김 대표의 불협화음이 극대화됐던 ‘비례대표 공천 파동’도 역효과를 내고 있다.


“문재인이보다도 인자 김종인이 더 싫어부러. 자기 욕심만 챙기고 나이도 많고… 비례대표는 10번도 2번이랑 똑같은디(당선권인데) 자기를 너무 앞쪽에다 놔뒀어. 그때(비례대표 공천 파동) 김종인이가 삐져서 여론이 더 안 좋아졌어요. 삐지기는 왜 삐져, 대화로 해야제. 김종인이 왔다가 한 번 가믄 분위기가 더 나빠져브러.”(김기중·65·택시기사), “아니, 저도 처음엔 김종인이 죽어가는 당을 살리니까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비례대표 2번 받는 거 보고 깜짝 놀랐어요. 너무 속 보이잖아요.”(김재훈·26·대학생)라는 이야기들이었다.


이 정도면 진퇴양난이다. 더민주 광주시당 관계자는 “요즘 광주에선 김종인 대표를 가리켜 ‘문종인(문재인+김종인)’이라고 한다. 문 전 대표가 와도 지지율이 떨어지고, 김 대표가 와도 마찬가지라는 의미”라고 자조적으로 말했다. 반대로 국민의당 광주시당의 곽복률 사무처장은 “김종인 대표가 더 많이 오면 올수록 우리는 고맙다”며 “‘왜 국보위 출신 사람을 광주에 오게 내버려두느냐’는 항의전화도 쏟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때 국민의당에 크게 앞섰던 광주·호남 지역 더민주 지지율이 비례대표 공천 파동을 겪은 뒤엔 국민의당에 다시 역전을 당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현재 더민주는 “광주에선 서갑(송갑석), 북을(이형석), 광산갑(이용빈), 광산을(이용섭) 등 4곳 정도는 해볼 만하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반타작이 현실적 목표치인 셈이다. 반면 국민의당은 “광산을 한 곳을 제외하곤 10%포인트 이상 차이로 우세하다”며 사실상 싹쓸이를 목표로 삼고 있다. 국민의당 광주시당 관계자는 “정당선거사무소를 광산을에 설치하고, 공식 선거운동 첫날 출정식을 광산을에서 치른 것도 ‘광산을에서만 승리하면 광주 전체를 석권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불리한 판세를 뒤집기 위해 더민주는 몇 가지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먼저 ‘김홍걸 카드’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삼남인 그는 호남권역 선대위원장과 국민통합위원장을 맡고 있다. 당의 두 간판 브랜드(김종인 대표와 문재인 전 대표) 모두 호남에서 잘 먹히지 않으니 DJ의 적통을 ‘제3의 얼굴’로 내세워 반전을 일으키겠다는 의도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29~30일 호남 지역에서 집중 유세를 했고, 3~4일 광주를 비롯한 호남 지역을 또 찾을 예정이다. 그는 중앙SUNDAY와의 통화에서 “더민주를 떠난 기존 지지자들에게 ‘돌아와서 당을 바꿔 달라. 그래야 정권교체가 된다’고 호소하겠다”고 의욕을 보였지만 “김 위원장의 인지도나 중량감이 약해 파급력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회의론도 있다.


“국민의당 결국 호남 자민련 될 텐데”어떻게든 상황을 반전시켜야 하는 더민주에선 “수도권 야권연대 향방에 따라 광주 표심도 바람을 탈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더민주가 수도권 연대를 요구하고, 국민의당이 거부하는 모양새가 계속 연출된다면 광주에서도 ‘안철수 책임론’이 확산되면서 떠났던 표가 더민주 쪽으로 결집할 수 있다는 기대다. 실제로 광주 유권자들은 지지하는 정당은 저마다 달라도 수도권 연대에 대해선 한목소리를 냈다. “누가 됐든 야당이 승리하니 호남에선 괜찮지만 수도권에선 연대를 해야 된다. 주변에서 ‘또 철수하는 것이냐’고 욕을 해대니 안철수가 이번엔 강한 이미지 심을라고 그러는 것 같은디 그것이 안 좋아요. 결국은 새누리당이 돼불잖아요”(김기중·65·택시기사), “여그서는 국민의당 지지가 더 높다. 하지만 (수도권 연대) 그거는 당연히 해야 되는 거제. 안 하믄 안철수가 나쁜 놈이제”(서구 주민 정모씨·73)라는 목소리였다.


더민주 소속의 한 후보는 “수도권에선 국민의당이 승리할 수 있는 곳이 몇 석 안 되니 결국 ‘호남 자민련’이 될 수밖에 없는데, 호남의 유권자들이 ‘호남 자민련’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냐가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당 광주시당 관계자도 “수도권 야권연대가 불발되고 ‘안철수 책임론’이 일 경우 광주에서의 국민의당 기세가 꺾일 수 있다”며 파장을 주시하고 있다.


‘미워도 다시 한번 더민주냐, 국민의당을 새로운 맹주로 키우느냐’를 결정할 변수는 ‘숨어 있는 표’의 향배라는 데 전문가들은 동의한다. 1일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호남 유권자들은 ‘자신이 선택할 지역구 후보의 소속 정당’에 대해 국민의당 28%, 더민주 24%의 응답률을 보였지만 ‘모름·응답거절’ 등 부동층이 30%로 다른 권역에 비해 높았다.


광주 지역 전문가들도 이번 총선에 대해 “정체성이나 정책에서 큰 차이가 없는 더민주와 국민의당 누구를 선택해야 할지 모르는 정말 어려운 선거”(지병근 조선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하기 싫은 투표를 해야 하는 상황”(김정희 참여정치21 공동대표)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거리에서 만난 민심 역시 마찬가지였다. 10명 중 7~8명은 ‘선거’란 얘기가 나오면 일단 표정을 찌푸리거나 “모른다”고 답했다. “뭐 뽑아놓으믄 다 똑같은 거 아니에요. 우린 뉴스도 안 봐요”(광산구에서 이불가게를 운영하는 40대 여성), “국민의당이나 더민주나 당선되믄 다 똑같아져부러요. 선거라고 하믄 (입) 자꾸(지퍼)를 잠가부러”(동구의 부동산에서 만난 60대 남성), “국민의당을 지지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은디, 정권교체 가능성으로 보면 더불어민주당을 해줘야 할 것 같고 진짜 잘 모르겄어요”(광산구 수완지구에서 만난 65세 여성 김모씨), “대통령감이 없응게 문제제. 지금은 정권교체 해줄 만한 사람을 찾아도 보이는 사람이 없어…”(김씨의 남편 67세 유모씨)라는 반응들이었다.


열흘 남은 총선까지의 마지막 바람은 어느 쪽으로 불까. 광주 유권자들이 선택할 전략적 투표의 향배에 따라 향후 야권의 대선구도까지 달라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특히 국민의당의 공언처럼 광주에서 1대 7 또는 0대 8의 참패가 현실화된다면 문 전 대표가 입을 정치적 타격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본다. 민간 정치연구소인 ‘더모아’의 윤태곤 정치분석실장은 “광주에서 참패할 경우 문 전 대표는 ‘호남의 선택을 받지 못한 야당 대권 후보’가 되기 때문에 상징성이나 확장성에서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정희 대표는 “광주에서 전패를 하든, 호남에서 의미 있는 승리를 하지 못할 경우 김종인 대표를 세운 문 전 대표가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박성민 민컨설팅 대표는 “더민주와 문재인으로 정권교체가 가능할 것인지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지 못할 경우 호남의 민심을 유리한 쪽으로 이끌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추인영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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