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붓글씨의 전설로 남은 왕희지, 1700여 년 전 ‘서성’을 만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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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희지 평전
궈롄푸 지음
홍상훈 옮김, 연암서가
536쪽, 2만5000원

중국인이 허풍이 세다지만 이 사람에 대한 과찬은 그럴 만하다고 고개가 끄덕여진다. 글씨를 얼마나 잘 썼기에 서성(書聖)으로 추앙받았을까. 당 태종(唐 太宗, 599~649)이 쓴 헌사는 그를 빼고는 서예를 논할 수 없다는 얘기로 들린다.

“고금의 역사를 자세히 살펴 서예를 정밀히 연구해보니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고 아름다운 것은 오로지 왕희지밖에 없구나! (…) 그 외의 하찮은 무리들이야 논할 가치가 있겠는가!”(253쪽)

왕희지(王羲之)는 이렇듯 전설로 남은 붓글씨의 성인이다. 생몰연대가 여럿이라 확정할 수는 없지만 대략 300년대에 태어나 360년대에 죽은 진나라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까지 이어져온 해서·행서·초서의 실용 서체(書體)를 정립하고 동아시아 서예의 주춧돌을 놓았다고 평가받는다. 그는 대표작으로 꼽히는 ‘난정서(蘭亭序)’ 등 2600여 편 가까운 여러 형태의 필적을 남겼다고 하는데 허무하게도 진적(眞跡)은 한 점도 없고 베껴 쓴 모사본과 탁본만 전해온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서예가였음에도 기록문화가 일천했던 시대적 한계로 그에 대한 전기나 평전은 의외로 적다. 궈롄푸(郭廉夫) 삼강학원 예술학원 교수가 1996년 펴낸 이 책은 지은이의 주관적 애호가 좀 지나쳐 보일 때도 있지만 왕희지와 그의 시대를 입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사료를 풍부하게 담고 있어 읽을 만하다. 최근 들어 중국에서 왕희지 연구서가 10여 권 넘게 출간되고 중국인들의 관심이 높아진 건 드라마 ‘서성 왕희지’의 힘이 크다. 한국 배우 김태희가 왕희지의 부인으로 출연해 화제가 됐다.

문자는 권력의 수단이었다. 당 태종은 지식인을 제어하기 위해 ‘서체의 표준화’를 시도했다. “‘고급문화’가 자연스럽게 자신의 의도와 취향을 따라오도록 유도했으며, 거기에 사용된 대단히 세련된 매체가 바로 왕희지의 서예였던 것이다.”(10쪽) 왕희지와 그의 아들 왕헌지의 글씨는 요즘 말로 문화 권력이었던 셈이니, 21세기 서예가들의 부러움을 살 만하다.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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