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겉잡을(?) 수 없는 산불은 이제 그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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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강원도에선 선거가 있는 짝수 해에 대형 산불이 발생하는 징크스가 있어 4·13 총선을 앞두고 긴장감이 높아진 상황이라 한다. 요즘처럼 건조할 때는 산불이 발생하기 쉽고 강풍까지 불면 대형 산불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산불이 막을 수 없을 정도로 커져 가는 상황을 나타낼 때 “강풍 때문에 작은 불씨도 겉잡을 수 없이 큰 불길로 번지기 쉽다” “최근 일어난 산불은 한번 붙으면 겉잡을 수 없는 게 특징이다”처럼 쓰는 경우가 많다. 이때 ‘겉잡다’는 적절하지 않은 표현이다. ‘한 방향으로 치우쳐 흘러가는 형세 등을 붙들어 잡다’는 의미를 나타낼 때는 ‘걷잡다’를 써야 한다.

‘겉잡다’가 ‘걷잡다’를 잘못 쓴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겉잡다’는 ‘걷잡다’와 다른 의미를 지닌 하나의 단어다. ‘겉잡다’는 ‘겉으로 보고 대강 짐작하여 헤아리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예산을 대충 겉잡아서 말하지 말고 상세히 보고해야 한다” “우습게 보여도 한 달 순이익이 겉잡아 200만원이 넘는다” 등과 같이 쓸 수 있다.

‘걷잡다’는 한 방향으로 치우쳐 흘러가는 형세를 붙들어 잡는다는 의미 외에 ‘마음을 진정하거나 억제하다’는 뜻으로도 사용된다. “걷잡을 수 없이 흐르는 눈물”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드는 매력”이 이런 경우다.

‘겉잡다’와 ‘걷잡다’가 아직도 헷갈린다면 ‘겉잡다’는 ‘겉으로 보기에 어림잡아’를 줄여 썼다고 기억하면 된다. ‘겉으로 보기에 어림잡아’로 바꿔 뜻이 통하면 ‘겉잡아’, 그 외에는 ‘걷잡아’를 쓰면 된다. 

김현정 기자 noma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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