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개좋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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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이런 일이 있었다. 어떤 사람이 커뮤니티 사이트에 ‘개노답’(정말 답이 없는 일)이라고 올렸다. 운영자는 어찌 이런 상스러운 말을 쓰느냐고 그를 탈퇴시켰다. 그러자 올린 사람이 항의했다.

그의 논리는 이런 것이었다. 표준국어사전을 보면 접두사 ‘개-’는 세 가지 의미로 쓰인다. 우선 ‘야생 상태의’ ‘질이 떨어지는’ 등의 뜻으로 사용된다(개떡·개살구). ‘헛된’ ‘쓸데없는’이란 의미로도 쓰인다(개꿈·개죽음). 또한 ‘정도가 심한’의 뜻으로 사용된다(개망나니·개잡놈).

이들 경우에서 보듯 ‘개-’를 붙였다고 해서 반드시 욕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항변이었다. 동물인 개(犬)와는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 운영자는 이를 받아들여 그를 다시 회원으로 인정했다.

사전적 풀이에 따르면 합당한 결론이라 생각된다. 학자 가운데는 ‘개새끼’의 ‘개-’마저 동물이 아니라 단순히 ‘나쁜’ 등의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개좋다’ ‘개웃기다’ ‘개맛있다’ 등 ‘개-’가 마구 쓰이고 있다. 매장에 ‘개이득’이라는 문구가 붙기에 이르렀다.

'개-’가 설사 동물인 ‘개’에서 온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아무데나 붙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말, 진짜, 엄청, 대단히’ 등 다양한 우리말 어휘를 두고 하필이면 ‘개-’를 붙일 필요가 없다. 무엇보다 ‘개새끼’ ‘개자식’ 등에서 보듯 자연스럽게 ‘개(犬)’의 이미지가 그려진다.

‘개-’를 쓰면 경박해 보이는 것을 피할 수 없다. 벚꽃놀이 가서 “날씨 개좋다. 벚꽃 개이쁘네. 사람도 개많이 왔다”고 한다면 누가 이를 교양이 있다고 하겠는가?

배상복 기자 sbb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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