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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사업가를 꿈꾸는 교포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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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교포사회가 안고있는 고민중의 하나는 어떻게 「장사꾼」으로부터 탈피해 「사업가」로 변신하느냐는 문제다. 말하자면 떳떳한 명함을 가지고 교포사회가 아닌 미국인사회에 정착하겠다는 것이 대부분 교포의 꿈이자 이상인 것이다.
대부분의 교포들은 이민사회에 뛰어들자마자 같은 교포를 상대로 일하면서 생계를 해결한다.
동양식품점등 각종 업체의 종업원으로 일터를 잡은 이민대열은 이민의 연륜과 함께 대망의 업주로 발전, 드디어는 큼직한 집을 마련하고 또 어느 정도의 현금까지 지니게 된다.
이처럼 일단 생활의 안정기에 접어든 이민대열은 그러나 이때부터 또 다른 고민을 지니게 된다.

<탈장사꾼의 집념>
교포사회를 벗어나자는 탈장사꾼의 집념, 말하자면 이렇다할 사업으로 미국사회에 뛰어들겠다는 것이 교포사회가 두번째로 맞는 과제이자 고민이다. 이를테면 사업가라는 명함으로 백인들과 교우하면서 상류사회로 올라가겠다는 부푼 꿈인것이다.
실제 로스앤젤레스에서부터 뉴욕에 이르기까지의 교포들이 하나 둘씩 교포사회를 떠나 미국사회속의 사업가로 탈바꿈하는 것도 교포사회의 밝은 모습임이 분명하다.
우선 동부지역을 중심으로 미국사회내의 사업가로 변신을 꾀하는 인물 중 뉴욕주 로체스터에서 레버식 자전거를 개발하고 있는 임병대씨(45)와 여자의 몸으로 실내장식업계에 만만찮은 위치를 쌓아올린 김리나씨(37)의 경우를 살펴보자.
한양대공대를 졸업, 지난 70년부터 미국에 정착해온 임씨는 회전식 자전거 시장에 레버식자전거로 도전하고 나선 교포사회의 호프-.
레버식 자전거의 세계특허를 얻은 다음 알레낙스사를 설립, 회장으로 취임한 임씨는 레버식 자전거가 시판되는 오는 5∼6월게 부터 미국 자건거 시장에 일대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며 자신만만한 표정이다.
레버식 자전거란 종래의 체인식이 아닌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한 것으로 무엇보다도 힘이 강해 쌀을 한꺼번에 3∼4가마나 운반할 수 있는 데다가 레버식이라는 장점때문에 수요자들에게 신선감을 주는 신상품이다.
임씨가 레버식자전거의 생산을 서두르자마자 미국 제1의 투자회사인 할만사가 1천5백만달러를 투자키로한데 이어 로체스터시 당국마저 3백만달러의 재정지원을 약속하고 나선것도 그만큼 시장성이 보장되는 까닭이다. 구체적으로 살필때 지난 82년도 뉴욕엑스포에서 금메달을 차지하는등 그 기능이 크게 입증되면서 나타난 사업적인 호응인 것도 물론이다.
알레낙스사는 현재 대만과 일본에서 부품을 생산해 로체스터 공장에서 조립, 금년에 5만대를 공급할 예정이다. 앞으로 미국전역은 물론 캐나다와 동남아까지 판매망이 확장될 경우 한국에 제2의 생산공장을 시설하겠다는 임씨의 설계다.
전 교포업계가 주시하는 임씨도 따지고 보면 장사꾼에서 사업가로의 변신을 꾀하는 대표적인 케이스 이민직후부터 약 2년간 자전거업계에 매달려오다가 72년부터 갈포수입업자로,그리고 75년부터는 골프용품상으로 그 나름대로의 경제적 기반을 다져온 장사꾼 출신의 사업가 지망생이다.

<파리에도 지사설치>
『이 넓은 미국땅에서 고작 밥먹고 살일만 걱정해서야 되겠읍니까』-. 사업입신만이 교포사회의 발전을 꾀하는 지름길이라면서 미국내 자동차업계만은 한국인이 지배해야겠다는 것이 그의 꿈이다.
반면 김리나씨는 다른 교포디자이너와는 달리 실내장식계에서 야심적인 사업가로 변신하고 있는 맹렬여성으로 유명하다.
실내장식을 미니사업 아닌 대규모사업으로 전환시키고 있는 김씨는 현재 맨해턴의 「킴 디자인 인터내셔널」이외에 파리에도 지사를 갖는등 교포사회의 여성사업가 중에서도 장래가 크게 촉망되는 인물-. 이화여대를 거쳐 68년에 도미, 캘리포니아 우드버리대학에서 4년간 응용미술학을 전공한 후 다시 파리 디자인 스쿨에서 3년동안 실내장식을 공부한 향학열이 험난키로 유명한 실내장식업계에서 그녀의 오늘을 있게 한 원동력이다.
여성사업가로서의 지위가 돋보이는 것은 사무실이나 공공장소의 마무리작업을 수주,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공간을 메우기 때문이다. 벽면의 색깔을 칠하고, 바닥을 깔며, 또 각종 집기와 용품을 납품함에 따라 계약고가 치솟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김씨 스스로 밝힌 그동안의 활동을 보면 지난 79년 이래의 수주량이 무려 3백여건, 최근엔 각종 세미나를 통해 미국사회에 깊숙이 파고들고 있어 앞으로 초대형 건물에 대한 실내장식등 작업량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낙관한다.
한국인 여성이 이렇듯 뉴욕에서 두각을 보일 수 있는 것은 우선 경쾌한 미국식 생활에 은근하며 질박한 「동양의 멋」을 조화시키는 독특한 경향이 미국인사회로부터 호응을 얻어낸 결과나 다름없다.
말하자면 맨해턴에 치솟아 있는 고층건물사이에 동양적인 청색과 창호지 같은 은근한 멋이 소개되자 미국인들이 높게 평가하고 나섰다는 설명이겠다.

<동양의 멋에 매료>
그 역시 사업가로서의 발돋움은 레버식 자전거의 임병대씨와 줄기를 같이한다.
『교포사회가 똘똘 뭉쳐 살다보면 차이나타운 처럼 3류 소수민촉으로 전락하고 말아요. 때문에 영어를 익히고 미국사회에 뛰어들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요』-. 그자신 아직도 미국사회에 완전히 뛰어들지 못했다면서 사업의 성패 역시 미국화되어가는 속도에 달려있음을 강조한다.
한달에 한두번씩 미국실내장식가를 모아놓고 「동양의 멋」을 강의하며 또 전미국여성협의회 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것도 미국화를 위한 몸부림이란 설명이다. 한마디로 미국사회에 뛰어들고 또 그 속에서 살아야한다는 것이 김씨의 꿈이자 이민의 목표다.
이처럼 제1단계 정착에 성공한 교포는 미국사회로의 비약을 꿈꾼다. 사업자금이 뒷받침되어 있고 아이디어만 좋다면 금융·보험·생산업·관광업 등 각 분야에 걸쳐 본격적인 진출도 가능하다.
사업가로서의 변신만이 황규빈씨 같은 미국내의 정상급 기업가를 낳을 수 있고 또 소수민족으로서의 전락을 막는 길이다.【뉴욕=이근량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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