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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 먹을 각오 돼있다, 창작 예술 획일적 지원 꼭 바꿀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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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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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진 위원장은 “기초예술분야가 사회로부터 고립돼 있어 우려된다. 하지만 분명한 건 창조산업의 뿌리는 기초예술”이라고 강조했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예술위·구 문예진흥원)는 순수예술과 문화 소외계층을 지원하는 공공기관이다. 한 해 2000여억 원을 집행한다. 예술 지원은 겉으론 아름답지만 늘 시끄럽다. 지원금을 못 받으면 “배후가 있다” “예술을 말살한다”고 거칠게 항의하기 일쑤다. 외부의 압력 등 정치적 입김에서 완벽히 자유롭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필요하지만 불편한 존재, 예술위의 현주소다.

박명진 문화예술위원장 인터뷰
해외시장 진출 할 교두보 만들어
지원하되 간섭않는 원칙 지킬 것

그런 현실에서 지난해 6월 취임한 이가 박명진(69) 위원장이다. 국내 불모였던 문화 연구의 장을 연 대표적 언론학자다. 예술위 43년 역사상 첫 여성 기관장이다. 하지만 언론학회장·방송통신심의위원장 등의 경력을 들어 “예술 현장을 모른다”는 비판도 있었다. 취임 초엔 공교롭게도 ‘예술 검열’ 논란까지 불거졌다. 호된 신고식을 치르며 박 위원장은 어떤 지향성을 갖게 됐을까. 지난 23일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집에서 박 위원장을 만났다. 취임 후 첫 언론 인터뷰다.

언론 출신인 탓에 적합성 논란이 있었다.
“내 전공이 문화 연구다. 미디어에 한정하지 않고 예술 전반, 특히 문화 소비자를 줄곧 탐구해왔다. 현재 대한민국은 콘텐트 산업에 대한 관심은 폭발적인데 반해 순수예술 분야는 고립돼 있다. 그렇다면 예술위는 예술현장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을 넘어, 기초예술과 예술산업을 연결하는 가교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그게 내 몫이라 생각한다.”
9개월을 돌아보면.
“성취를 얘기하긴 이르지만 방향 감각은 섰다. ‘창작 지원을 중심으로 예술 진흥 정책을 펴는 게 과연 맞는가’라는 근본적 회의다. 공공기금에 의탁하는 예술가가 상당수다. 지원금 깎이면 아예 사업을 접는 경우도 허다하다. ‘지원금 시장’이라는 말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창작 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게 아니다.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창작자 지원만이 예술 지원의 전부가 돼선 안 된다.”
기존 지원의 문제점이라면.
“우선 획일적이다. 연극의 경우 대본 보고 9편 선정해 1억 원씩 똑같이 준다. 작품마다 규모도 다르고, 스타일도 다르지 않나. 맞춤형이 전혀 아니다. 또한 스스로 자립할 의사가 없는 이들에게 퍼주기식 지원도 경계해야 한다. 심사위원을 평론가로만 구성하기보다 창작자·기획자 등으로 다양화해야 한다. 지원 방식을 바꾸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알지만, 욕 먹을 각오 돼 있다.”
대안이 있는가.
“예술시장 활성화다. 창작자를 돕는다는 차원을 넘어 예술시장을 실질적으로 키워 그 혜택이 퍼지는 데 집중하겠다. 문학이라면 작가와 독자가 만나는 공간을 넓힐 예정이다. 브랜드 연극 발굴, 어린이 공연 확대도 핵심 사업이다. 무엇보다 해외 진출의 교두보가 되겠다. 이미 영국 예술위원회(Arts Council England)와 양해각서를 맺고, 2년간 25억 원의 공동 기금을 마련키로 했다.”
10년전 5000억 원에 이르던 문예진흥기금이 현재 800억 원까지 떨어졌다.
“현 추세라면 내년에 고갈된다. 문예진흥기금은 1972년 처음 설치됐다. 박정희 정부 때 조성된 기금이 박근혜 정부에서 없어진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물론 예술위가 자구 노력을 게을리해선 안 된다. 클라우드 펀딩, 기업 기부금 조성에 매진하고 있다. 하지만 역부족이다. 범정부적 대책이 절실하다.”
정치적으로 편향된 특정 연출가의 지원을 번복해 ‘예술 검열’ 논란이 일었다.
“꽁무니를 빼는 건 아니지만 취임 전 일이다. 정치적 쟁점이 있는 사안을 직원들이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 일을 부적절하게 처리한 건 분명하다. 유감스럽다. 이를 반면교사 삼아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더욱 명확히 하겠다.”

글=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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