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흔든 시 한 줄] 가수 하춘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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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춘화 가수

지금 좋다고 좋아하지 말고
지금 슬프다고 슬퍼하지 말라
- 김채임(1922~ ), ‘딸들에게’ 중에서

올해 아흔넷 어머니의 당부
세월만큼 훌륭한 시가 있을까

각계 명사의 애송시를 소개하는 이 코너에서 많은 격려를 받아왔다. 여섯 살 어린 나이에 가수로 데뷔한 까닭에 남들보다 철이 일찍 든 것 같다. 어른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보니 제법 조숙한 편이었다. 세상의 스트레스는 사람 관계에서 비롯한다는 걸 진작 깨달았다. 힘들 때마다 떠올리는 시가 있다. 러시아 시인 알렉산드르 푸시킨(1799~1837)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이다. 귀에 못이 박일 만큼 들어왔지만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는 시인의 당부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가슴에 늘 품고 사는 ‘시’가 또 하나 있다. 집 안 화장대에 붙여놓고 1년 365일 바라본다. 올해 아흔넷, 내 어머니 김채임 여사의 말씀이다. 그 어떤 명구(名句)보다 내게 큰 영향을 미쳐왔다. 삶은 전화위복(轉禍爲福)·새옹지마(塞翁之馬)의 연속이라 했다. 눈앞의 일희일비에 휘둘릴 일이 아니다. 예전 어른 대부분이 그랬듯 어머니는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 두 줄만큼 삶을 꿰는 지혜가 또 있을까. 학식이 아닌 경험에서 우러나온 ‘몸의 시’다. 5년 전 봄날 밤, 동네 꽃구경을 갔을 때 어머니의 한마디도 뭉클하다. ‘이 꽃은 다시 피는데 내 청춘은 어디로 가서 오지 않는가’.

가수 하춘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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