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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의 신인도「신당바람」에 거뜬히…|잠설친 「이변 드라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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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뚜껑을 열자 회오리는 시작됐다. 중반을 넘어서자 돌이킬 수 없는 대세였다.
유례없이 높았던 국민들의 관심과 호응을 반영, 84.6%의 27년이래 투표율을 기록한 제12대 총선은 밤샘개표가 진행되면서 전국곳곳에서 이변의 드라머를 연출, 정치권은 물론 한 표의 심판을 내렸던 국민자신들까지 놀라는 표정들이었다.
유세과정에서 열풍으로 일었던 신당바람은 서울을 비롯한 주요도시에서 무명신인까지를 포함한 신민당 후보를 다투어 1등 당선으로 밀어 올린 반면 「안전당선」이 틀림없다던 여·야 정당의 중진들이 어이없이 탈락하거나 고전 끝에 턱걸이를 하는등 민심의 향방을 확연히 드러냈다.
전국 2백32개 개표장에서 예상을 깬 개표가 진행되는 동안 여·야 정당과 후보자들은 초조와 낙담, 환호와 비탄사이를 숨바꼭질했으며 시민들은 집집마다 TV를 켜고 손에 땀을 쥔 채 시소게임을 지켜보느라 잠을 설쳤다.
대세가 판가름난 13일 아침 출근길의 시민들은 너나없이 총선화제에 들뜬 표정이었다.

<"공원용지 풀지 말라">
○…서울의「정치1번지」로 불리는 종로-갑구 지역의 중구청개표소에서는 12일 하오 8시50분 장충동. 투표함부터 개표가 시작돼 이민우 후보(신민)와 정대철 후보(민한)표가 쏟아지자 한때 장내에는 긴장감이 감돌았으나 남대문로·소공동 등을 개표하면서 이종찬 후보(민정)의 표가 야당후보를 앞서자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개표소에 나온 정대철 후보 지지자들은 신민당의 이민우 후보가 앞서고 방송을 통해 중계되는 개표상황이 신민당에 유리하게 전개되자 『바람앞에 어쩔수 없다』며 『정후보가 신민당에 들어갔으면 금메달 감인데…』하고 아쉬운 표정.
또 신당동 달동네에서 민정당의 이후보 표가 적게나오자 어떤 지지당원은 『괘씸한데 공원용지를 풀어주지 맙시다』라며 신경질을 내기도 했다.
○…관심이 집중된 지역이어서 인지 서울 종로-갑구의 중구청 개표소에는 12일 하오 9시50분쯤 외신기자 4명이 둘러보고 개표상황을 물었으며 하오 10시17분쯤에는 「프렌치내셔널」동경지국의 취재기자 3명이와 촬영을 하는등 외신기자들도 깊은 관심을 표명.
○…서울의 14개선거구 가운데 여당후보를 떨어뜨리고 야당후보만 두 사람을 뽑은 서울 강남구 개표장인 경기고2층 일반참관인 석을 가득 메웠던 2백 여명의 정 당원과 시민들은 개표가 끝난뒤 『이제「서울의 정치1번지」는 종로-중구가 아니라 강남』이라고 말하며 자부심에 찬 분위기.
강남구는 개표전의 득표예상이 완전히 빗나간 대표적인 케이스.
당초 민정당의 이태섭후보는 조직과 자금 면에서 압도적으로 우세, 금메달 아니면 최소한 은메달로 당선될 것으로 예상됐으나 12일 하오 9시20분쯤 개표가 시작되자마자 예상이 빗나가기 시작.

<물난리가 표 쓸어가>
가장 열세로 점쳐졌던 신민당의 김형래 후보가 뜻밖에도 초반부터 우세를 나타내고 그 뒤를 민한당의 이중재 후보와 민정당의 이태섭 후보가 뒤쫓는 형세로 개표가 진행되자 개표장 분위기가 술렁거렸다.
김후보의 우세는 종반까지 꾸준히 지속된 반면 중반한때 이태섭 후보에 뒤졌던 이중재 후보가 후반에 이태섭 후보를 추월, 은메달을 땀으로써 시소게임의 막을 내렸다.
승세가 굳어진 13일 0시20분쯤 상기된 표정으로 5∼6명의 당원들과 함께 개표장에 나타난 신민당의 김 후보는 두 손을 들어 승리의 V자를 그려 보이고는 기자들에게 『이는 나의 역량이 아니고 민주회복을 열망하는 유권자들의 준엄한 명령』이라고 소감을 피력.
○…개표초기부터 시종 2배 이상의 표 차로 2위를 따돌리던 서울 마포-용산의 노승환 후보가 84년 대홍수의 피해지역인 망원·합정동에서는 평균 3배 이상의 표 차로 차점자인 봉후보를 압도하자 개표종사원들마저 『물난리가 여당 표를 쓸어가 버렸다』고 한마디 씩.
○…마산에서 출마한 30대 초반인 무명의 강삼재 후보가 현역의원인 백찬기후보(신민당) 를 누르고 민정당의 우병규 후보와. 함께 동반당선이 확실해지자 개표 관계자들은 지난 8일마산 역 광장에서의 피습사건이 전화위복이 되었다고 풀이.
강후보는 선거유세 초반까지만해도 신민당에서 복수공천을 받은 백 후보에게 조직력과 자금동원능력이 뒤져 득표작전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으나 마산역 사건이후 태풍의 눈으로 부상, 상당한 동정표가 몰렸을 것이라고 선거관계자들은 분석.
강후보의 한선거운동원은 강후보를 피습했던 정선호 씨에게 감사 대라도 줘야할 판이라며 희색이 만연.

<개표원 바꾸라 고함>
○…서대문구 개표장인 서울여상에는 13일 0시40분쯤 김재광 후보(신민)가 찾아와 선관위원장에게 대신동 제1투표구 집계과정에서의 개표종사원들의 실수를 공식으로 항의하는 모습.
김후보는 서성선관위 위원장에게 『이럴 바에는 우리의 패배를 인정할 테니 민정당 후보를 우승시키라』고 고함을 쳤으며 『개표 원들을 즉각 교체시켜야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 위원장은 『개표과정에서 개표종사원들의 실수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선거관리위원장을 믿어달라』고 통사정.
또 상오 2시22분쯤에는 윤길중 후보가 개표장으로 찾아와 당원들을 격려하는 모습도 보였다.
윤후보는 『3등의 손세일 후보와의 격차가 굉장하다』는 민정당 참관인의 보고를 듣고 『투표결과에는 승복한다. 민심에 따라야한다』면서 당원들을 격려한뒤 상오 2시40분 쫌 개표장을 떠났다.

<이철후보, 전경과 인사>
○…서울성북구에서 당선된 신민당 이철 후보가 13일 상오 11시5분쯤 성신여대 체육관에 마련된 성북을 개표소에 모습을 나타내 선관위직원·당원들을 격려.
이후보는 개표소에 들어서면서 참관인들과 당선축하악수를 나눈 뒤 개표소 앞에 세워둔 기동경찰 버스에 올라 전투경찰들에게 『그동안 심려를 끼쳐 미안하다』며 인사를 나누기도.
이 후보는 또 10여분간 즉석기자회견을 갖고『국민의 민주화 열망이 얼마나 큰가를 실감했다』고 말하고『지금심정은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될 때의. 비장한 신념과 비슷하다』 고 설명.
이 후보는 또『당선되리라고 확신하고 있었다』며『압도적인 승리는 비공식 자원봉사 대학생들의 도움이 가장 결정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6백 표차로 은매달>
○…선거구(전남승주-구례)를 후배에게 양보하고 한번도 살아 본적도 없는 서울 구로구에 뛰어들어 거뜬히 금메달을 딴 신민당 조연하 후보는 『선명 야당에 대한 국민의 기대를 확신했다』면서 유권자의 기대에 어긋나지 앉는 의정활동을 펼치겠다고 다짐. 참관인을 위해 민주화장실까지 만들었던 조후보 지지당원들은. 서울에서 가장 빠른 13일 상오 6시2O분 개표가 끝나 당선이 확정되자 「민주민중」만세를 부르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전국에서 가장 적은 선거인수(9만8천4백77명)를 가진 전북진안-지주-장수지역에서 2위로 당선된 김광수 후보(국민)는 투표자수 8만8천4백31명중 1만7천3백63표를 얻어 역시 전국에서 가장 적은 투표수로 낙선된 케이스가 됐다.
김씨는 3위의 이상옥 후보(신민)보다 6백18표를 더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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