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한·일 자체 핵무기 제조하는 것 용인할 수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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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실시된 애리조나 프라이머리를 앞두고 연설하는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경선 후보. 이날 프라이머리에서 트럼프는 득표율 47%로 1위를 차지했다. [AP=뉴시스]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선두 주자를 달리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가 25일(현지시간) 한국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크게 늘리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겠다고 밝혔다. 또 미국이 동북아의 방위를 책임지지 못하는 시점이 올 수 있는 만큼 한국과 일본의 독자적인 핵 무장을 용인할 수 있다는 주장까지 냈다.

“미국, 동북아 방위 못할 상황 오면
양국 핵무장에 관한 논의 필요해”

트럼프는 이날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일본이 미군 주둔 비용 분담을 상당히 늘리지 않으면 뺄 것인가”라는 질문에 “즐겁지는 않겠지만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트럼프는 “미국은 수십억 달러의 막대한 돈을 잃는 것을 감당할 수 없다”며 “과거엔 우리가 돈을 댈 수 있었지만 더는 그럴 수 없다”고 이유를 들었다. 그는 “한국과 일본이 분담금을 인상할 것 같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나는 (미군 철수를 놓고) 예스(yes)라고 말할 것”이라고 거듭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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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 NYT가 한국·일본이 분담금 인상 요구에 대응해 자체 핵 무장을 주장할 수 있다고 지적하자, 트럼프는 “언젠가는 우리가 (한국·일본을 지켜주는 역할을) 더는 할 수 없는 시점이 올 것”이라며 “미국이 지금처럼 약해지는 길을 계속 가면 한국과 일본은 어쨌든 핵 무장을 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핵무기를 가진 북한에 대응해 일본도 핵무기를 갖는 것을 내가 바라는가? 그게 더 나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어 “(한·일 핵 무장은) 일정 시점이 되면 논의해야만 하는 문제”라고 주장했다. NYT는 “그(트럼프)가 일본과 한국이 북한과 중국에 대응해 미국의 핵우산에 의존하기 보다 자체 핵무기를 제조하는 걸 용인할 수 있을 것(he would be open to allowing Japan and South Korea to build their own nuclear arsenals rather than depend on the American nuclear umbrella for their protection against North Korea and China)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트럼프는 그간 한국을 안보 무임승차국으로 비난하며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요구해 왔지만 이번에는 한·미 관계에서 금기어나 다름없는 주한미군 철수를 거론했다는 점에서 폭탄 발언이다. 주한미군 주둔을 통해 미국이 한국에 핵 우산을 제공하고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는 대신 한국은 베트남전 파병부터 이라크전 파병에 이르기까지 역대 미국 정부의 전세계 군사 전략을 지원해 왔다.

주한미군은 한·미동맹의 근간으로 철수하면 양국의 군사동맹이 해체된다. 또 트럼프의 한·일 핵 보유 용인은 미국은 물론 중국도 강력 반대했던 핵 도미노를 용인하겠다는 주장이라 국제적 논란으로 번질 수도 있다. 주한미군·주일미군 철수는 미국의 핵우산 제공 중단을 뜻하는 만큼 양국의 자체 핵 무장론은 강화될 수 밖에 없다.

이 같은 트럼프 구상은 집권하면 역대 미국 행정부의 전통적인 대외 전략을 완전히 허물겠다는 주장이다. 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태평양 재균형 정책을 백지화하겠다는 예고이기도 하다. 재균형 정책은 군사적으론 아태 지역에 미군 전력을 대거 투입해 미국의 역내 주도권을 유지하려는 전략이다. 미국 국무부는 트럼프 발언에 대한 입장을 묻는 본지 문의에 “28일께 익명으로 밝히겠다”며 답을 미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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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중국·일본·한국·중동이 체계적으로 미국으로부터 뜯어 갔다”고 인터뷰에서 주장했다. 그는 “나는 고립주의자가 아니라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라며 철저하게 순익을 따지는 장사꾼 외교를 예고했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산유국을 향해선 이슬람국가(IS) 격퇴전에 지상군을 보내지 않을 경우 원유 수입을 중단하겠다고 위협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놓곤 “경제적으로 미국에 불공정하다”고 비난했다. NYT는 “트럼프는 해외 미군 주둔이 군사적 모험주의를 차단하고 교역을 보호하며 정보를 수집하는데 가치가 있다는 주장에 대해 전혀 동의하지 않는 눈치였다”고 전했다.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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