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유럽이 중국 제친 건 ‘신대륙 자원’ 얻은 행운 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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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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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분기
케네스 포메란츠 지음
김규태·이남희·심은경 옮김
에코리브르
686쪽, 3만8000원

영국의 경제사학자 앵거스 매디슨에 따르면 1820년 전 세계 GDP의 약 33%를 청(淸)나라가 점하고 있었다. 반면 유럽 전체를 합한 GDP는 23% 정도에 불과했다. 중국 국력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속으로는 이미 역전을 허용하고 있었으니 그 결과가 20년 후 터진 아편전쟁에서 청이 영국에 패한 것이다.

유럽이 아시아를 앞서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턴가. 저자는 서유럽의 패권을 결정지은 시기는 기껏해야 1750년대 중반이라고 말한다. 대분기(大分岐, The Great Divergence)의 시작이다. 책은 당시 중국과 서유럽 경제권에서 가장 발달한 곳인 양쯔(揚子)강 삼각주 지역인 장난(江南)과 잉글랜드 등 두 곳을 연구 대상으로 삼아 무엇이 아시아와 유럽의 차이를 가져왔는지를 분석한다.

과거 서구학계의 전통적인 시각은 서구 우위의 시작을 15세기 전후로 끌어올리기도 한다. 저자는 이 같은 유럽 중심적 시각에 회의적이다. 연구 결과 18세기 중반까지 장난과 잉글랜드 간 드러나는 차이는 별로 없다는 것이다. 농업생산과 공중보건, 기대수명에 이르기까지 두 지역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

한데 중국을 침체로, 영국을 성장으로 이끈 결정적인 차이는 어디서 나왔나. 영국이 공업혁명을 이루고 근대 세계 경제의 패권의 쥘 수 있었던 것은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석탄(노천 탄광)과 신대륙의 자원(원면, 설탕, 목재, 은)이 가져다 준 행운에 기인했다고 저자는 반복적으로 주장한다.

유럽 우위의 원인을 내재적 배경이 아니라 비교사적 방법을 통해 유럽과 외부 세계의 관계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책이 2000년 존 킹 페어뱅크 상을 받는 등 학술적인 성격이 강해 저자의 논지를 따라가는 게 평이하지는 않다.

유상철 논설위원 겸 중국전문기자 you.sangch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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