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희망 보여준 첫 걸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7면

지휘자로도 활동 중인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가 한 인터뷰에서 오페라 지휘를 가리켜 영화 '벤허'에서 전차를 모는 사람에 비유했다. 양손에 열 마리의 말고삐를 쥐고 달리는 것 같다는 얘기다.

무대 위(성악가와 합창단)와 무대 아래(오케스트라)를 동시에 이끌어야 하는 오페라가 그렇다면 교향악단 지휘는 양손에 다섯 마리의 말고삐를 쥐고 달리는 것에 비길 수 있을까.

지난 4일 분당 계원예고 벽강예술회관에서 열린 성남시향 창단 연주회에서 초대 상임지휘자 주익성(41)씨는 공연 내내 오른손 하나로 열 마리의 말고삐를 쥐고 전차 경주에 임했다.

왼손은 섬세한 뉘앙스나 강약 등 다양한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는 오른손 동작을 그대로 반복하는 데 그쳤다. 그래서 드보르자크 '신세계 교향곡'에선 현악기와 관악기의 시차(時差)가 느껴질 정도로 앙상블불협화음이 자주 노출됐다.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이 협연한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에서도 독주자 쪽으로 시선을 집중해 오케스트라가 끌려가는 느낌을 주었다.

워싱턴에서 한인 교향악단을 지휘하고 있는 재미교포인 주씨는 국내 음악계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5년 전 서울시향 지휘자 데뷔 콘서트에서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제8번을 지휘한 게 전부다.

지난 5월 12일 47명의 정단원으로 출발한 성남시향은 20여명의 객원단원을 보태 두달 만에 창단 연주회 무대에 섰다. 창단 공연이어 연주에 임하는 단원들의 사기도 높았으나 '위기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은 앞으로 앙상블 경험을 쌓아가면서 해결해야 할 과제로 보인다.

젊은 지휘자에게 지휘봉을 맡긴 만큼 교향악단과 지휘자가 함께 커나간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한다면 수원.부천.인천 등 이미 자리잡은 수도권 교향악단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오케스트라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은 충분하다.

성남시는 합창단.교향악단에 이어 국악단.무용단까지 창단할 계획이며 2005년 완공을 목표로 성남문화예술관을 신축 중이다.

이날 시장을 비롯한 지역 유지들을 소개하느라 공연 시작이 25분이나 지연되자 시민들은 분통을 터뜨렸지만 오후 10시가 될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고 성남시향에 대한 격려와 기대를 아끼지 않았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