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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 논란에 역선택까지…갈 길 먼 ‘상향식 공천’ 실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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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4·13 총선용 새누리당의 상향식 공천 실험이 21일로 사실상 끝났다. 김무성 대표가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하고 시작한 정치실험이었다. 하지만 253개 지역구 중 141곳(55.7%)에서만 실시됐다. 일단 규모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당초 추진했던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 대신 ‘여론조사’에 그친 것도 기대에 못 미친 부분이다. 여론조사 방식에도 문제점이 적잖게 노출됐다. 그나마도 결과를 공개하지 않은 ‘깜깜이 여론조사’로 치러져 “이럴 거면 왜 경선을 하느냐”는 지적도 잇따른다.

253개 지역구 중 141곳서 경선
100% 일반 유권자 대상 조사 탓
당원 의사 미반영, 야당 출신 공천도
여론조사 문항·결과 숨겨 비난 자초

◆뒷말 나온 공천자들=이번 여론조사 경선엔 새누리당 당원들의 의사가 따로 반영되지 않았다. 거의 대부분 지역에서 100% 일반 유권자 대상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이러다 보니 ‘당 정체성’ 논란이 자주 불거져 나왔다. 경남 밀양-의령-함안-창녕 경선이 대표적 사례다. 이곳에서 공천을 받은 엄용수 후보는 2006년 열린우리당 공천으로 밀양시장에 당선됐던 인물이다. 충남 서산-태안에서 성완종 전 경남그룹 회장의 동생 성일종씨가 공천을 받은 것을 두고도 뒷말이 나온다. 성 회장 자살을 안타까워한 지역 여론에 힘입어 성 후보가 승리했다는 분석이지만 정작 성 회장은 숨을 거두기 전 박근혜 정부 핵심 관계자들을 비리 전력자라고 폭로했다. 새누리당에선 “야당이 본선에서 쓰기 좋은 공격 포인트”라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외국어대 이정희(정치학과) 교수는 “당 정체성에 맞는 후보를 내서 심판을 받는 게 정당민주주의의 기본”이라며 “새누리당이 여론조사에만 책임을 넘기지 않도록 제도를 손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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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 지지자가 SNS에 올린 ‘역 선택’ 유도 글.

◆야당 지지자들 개입?=당내 경선엔 ‘역선택(반대 정당 지지자가 약체 후보를 선택하는 행위)’이 존재할 수 있다.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새누리당은 ▶여야가 함께 ▶전국 모든 선거구에서 동시에 현장투표를 실시하는 오픈프라이머리를 추진했다. 하지만 여야 동반 실시는 야당의 반대로, 현장투표는 새누리당 내부의 합의 불발로 물 건너갔다. 그러자 역선택이 여당 경선판을 덮쳤다. 과천-의왕 경선에서 패한 최형두 후보는 21일 이와 관련한 사진을 공개했다. 새누리당 여론조사 경선 일정을 상세히 알려주며 “박요찬 후보를 찍어라. 그게 우리 후보에게 유리하다”고 쓴 더불어민주당 지지자의 글들이었다.

◆공천위 독점 … 갑질=새누리당 여론조사 경선에 참여하려면 후보 한 명이 최소 2000만원(결선조사 시 4000만원)을 내야 했다.

그런데 공천관리위원회는 이 여론조사를 조사문항까지 비공개한 것은 물론 조사 결과마저 꽁꽁 숨겼다. 이 때문에 “공천위가 여론조사를 조작했다”는 괴담이 떠돌고, 서울 여의도 당사 앞에서 연일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패자의 명예를 생각한다”는 주장이지만 오히려 패자가 결과 공개를 요구해도 요지부동이다. 서울에서 낙천한 한 예비후보는 “정보 독점 갑질을 하는 공천위를 상대로 소송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단국대 가상준(정치학과) 교수도 “ 새누리당 경선의 투명성 점수는 20~30점 수준”이라고 혹평했다.

◆‘민심 반영’엔 효과=다만 ‘민의’가 경선 결과에 반영될 가능성을 보여준 건 성과라는 평가도 있다. 친박근혜계가 ‘3·15 공천’으로 비박계 현역 7명을 탈락시킨 뒤 실시된 경선 결과를 놓고 이런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16일 이후 친박계 핵심들(김재원·강석훈 의원, 윤두현·조윤선 전 청와대 수석, 최상화·전광삼 전 춘추관장 )이 줄줄이 경선에서 탈락한 것을 두고 비박계에선 “여론의 큰 흐름에 반하면 경선 실패로 직결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권성동 전략기획본부장은 “일부 지역에서 민의가 반영된 것만으로도 국민공천 실험은 성공”이라고 주장했다. 

남궁욱 기자 periodist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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