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화·정’ 트리오 다시 날개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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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국내 증권시장에서 2010~2011년은 ‘차화정(자동차·화학·정유) 전성시대’로 불렸다. 당시 세 업종에 속한 수출기업의 주가 상승률이 유독 높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양적 완화, 중국 경제의 급성장 등에 힘입어 국내 증시를 이끌었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은 예전의 명성을 보이지 못했다. 특히 지난해 미국 금리인상, 국제유가 급락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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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랬던 차화정 트리오가 최근 부활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화학과 정유기업의 주가가 지난달부터 상승한 가운데 자동차주도 반등하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지난달 1일 27만7000원대에서 21일 32만8500원으로 18% 올랐다. 같은 시기 28만원대이던 LG화학 주가도 이날 31만3500원으로 상승했다. SK이노베이션도 13만원대에서 16만3000원으로 올랐다. 현대자동차 역시 13만2500원에서 15만4500원으로 16% 상승했다.

현대차·롯데케미칼 등 주가 상승
관련 ETF도 올 들어 8% 올라
일부선 “오래가기 힘들다” 전망도

업종 전반의 성적을 반영하는 상장지수펀드(ETF)가격도 상승세다. 삼성자산운용의 ‘삼성 KODEX에너지화학’의 1주당 가격은 1만1250원으로 연초 이후 약 8%, ‘삼성KODEX자동차’는 1만8240원으로 약 4% 올랐다. 같은 기간 코스피 지수 상승률(약 3%)보다 높다.

2014년 6월 100달러대에 거래되던 국제유가가 지난해 배럴당 30달러 선까지 급락하며 국내 정유·화학 업체는 실적 악화에 시달렸다. 하지만 이는 도리어 이점도 됐다. 화학 업종에선 저유가 상황이 이어지면서 중국 등 경쟁업체의 투자가 줄었다.

이지연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 국내 화학 업종은 중국 석탄화학 업체의 가동률 감소로 판매 수익이 올라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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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지난 2월부터 ‘사자’로 돌아선 외국인 투자자도 화학에 주목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자가 올해 들어 코스피 시장에서 가장 많이 순매수한 업종이 ‘화학(6537억)’이다. 정유업체도 저유가가 오랜 기간 지속함에 따라 판매 수요가 늘면서 이익률이 높아졌다.

국제유가는 요즘 반등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2월 배럴당 20달러까지 내려갔던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최근 40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윤재성 하나금융투자 연구원도 “국제유가의 상승에 따라 이달 말부터 정유사의 정제 마진(원유를 정제해 만든 석유제품에서 얻는 이익)이 상승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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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자동차 업계는 달러 대비 원화가 약세를 보이며 해외 수출에서 ‘가격 인하 효과’를 누렸다. 올해 세계 자동차 판매량도 증가할 전망이다. 이명훈 HMC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달 세계 자동차 수요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7% 증가한 660만1000대”라며 “향후 서유럽과 중국을 중심으로 신차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차화정’의 상승세가 단기간에 그칠 거란 전망도 있다. 손영주 교보증권 연구원은 “정유·화학주가 단기간 상승하겠지만 워낙 국제유가의 변동성이 높아 수익률은 높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국 자동차는 가격에서 중국에 밀리고, 전기·스마트카 등 차세대 차종 개발에서 선진국과 격차를 못 좁혔다”며 “큰 폭의 매출 증가는 당분간 기대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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