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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대통령·총리·장관이 도서전 응원…국내 출판인들 “부럽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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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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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작가가 17일 프랑스 파리도서전에서 사인회를 하고 있다. 독자들은 『개밥바라기 별』 『심청』 등의 프랑스어 번역책을 들고와 황 작가에게 사인을 받았다.

17∼2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베르사유 전시장에서 열린 파리도서전은 프랑스가 왜 문화강국인지 그 원천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학생들은 교사와 함께 현장학습 와
아줄래 문화장관 “책이 문화 중심”

그동안 국내 출판계에서 파리도서전은 별다른 이슈가 되지 못했다. 프랑스 독자 위주의 ‘B2C(판매자·소비자 간 거래)’방식인데다, ‘B2B(판매자간 거래)’형태로 운영돼 저작권 거래가 활발한 프랑크푸르트도서전·런던도서전·볼로냐도서전 등에 비해 규모도 작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는 우리나라가 한·불 수교 130주년 기념 문화 교류의 일환으로 주빈국을 맡아 71개 출판사가 참가했다. 대부분 처음 파리도서전을 접한 국내 출판인들은 “부럽다”를 연발했다.

공식 개막 전날인 16일 오후 전시장을 찾은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두 시간 넘게 머무르며 출판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전시된 책들을 살펴봤다. 오드레 아줄래 문화부 장관은 16일과 18일, 이틀 간격으로 전시장에 들렀다. 또 마뉴엘 발스 총리, 엠마뉴엘 마크롱 산업경제부 장관, 조르주 포 랑쥬방 해외영토부 장관 등도 도서전 현장을 찾았다.

18일 한국전시관에 온 아줄래 장관에게 그 이유를 묻자 “문화는 프랑스의 심장이고, 문화의 중심에 책이 있다. 프랑스의 모든 정치인들이 그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책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고 대답했다. 옆에 있던 한 국내 출판사 대표는 “서울국제도서전에는 대통령은 커녕 주무 부서인 문화부 장관도 오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파리도서전 기간 동안 전시장을 채운 독자들 중 상당수는 학교에서 현장학습을 나온 초·중학생이었다. 이들은 ‘도서전에서 2명의 작가를 만나 젊었을 때 어떤 책을 읽었는지 물어보라’‘진열돼 있는 책 중 사고 싶은 책의 제목과 저자 이름을 적어오라’ 등의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전시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책을 사는 체험도 교육의 하나로 진행됐다. 파리의 에꼴 마드모아젤 학교에서 온 초등 2학년 아이들은 학교에서 나눠준 12유로짜리 상품권으로 한 권씩 책을 샀다.

파리 북부 파드칼레 지역 중학교에서 도서부 학생 50명을 인솔하고 온 발레리 카사르 교사는 “얼마나 다양한 책이 존재하는지, 또 책을 어떻게 사는 것인지 알려주려고 매년 온다”고 말했다. 사야 하는 책을 주문하는 방식이 아닌, 이 책 저 책 둘러보다 사고 싶은 책을 발견하는 재미를 학교 교육과정에서 가르치는 것이다.

프랑스의 출판 산업 육성 정책 중 대표적인 제도는 도서정가제다. 1981년부터 어떤 서점도 책값을 깎아주지 못하는 ‘랑법’이 시행 중이다. 인터넷 서점도 예외가 아니다. 프랑스 전역에서 30개 지점을 운영하고 있는 지베르 조셉 서점의 리사르 뒤부아 판매총괄 매니저는 “도서정가제 덕분에 동네 서점들이 문을 닫지 않게 됐으니, 랑법을 반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출판 산업을 지키자는 공감대가 사회 전반에 탄탄하게 자리잡았다는 얘기다.

지난해 우리나라 가구당 도서구입비는 월 1만7402원으로 전년 대비 8.3% 감소하며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전국의 서점 수도 98년 4897개에서 2015년 1559개로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책 안 읽는 사회에서 문화 융성을 기대할 수 있을까. 파리도서전은 우리 출판계뿐 아니라 정치권과 교육계도 눈여겨봐야 할 모델이다.

한편 도서전 기간 중 현장에서 판매된 한국 도서는 대략 1만여 권을 웃돌 것으로 전망된다. 책이 번역돼 프랑스 독자들에게 널리 알려진 황석영·김영하 작가의 강연은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큰 관심을 모았다. 오정희·한강·김애란 작가가 참여한 ‘한국 여성 작가의 목소리’에도 100여 명의 프랑스 독자가 몰렸다.

글·사진 파리=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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