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치의 임상 노트] 또래보다 작고 마른 아이, 성장 막는 크론병 아닐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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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어린이병원 박재홍 교수
청소년 시기는 신체·정서적으로 많은 변화가 일어나므로 치료 과정에서 고려할 사항이 많다. 소아청소년과의 진료는 다른 진료과와 차이가 난다. 성인과 동일한 질병이라도 발병 양상, 치료, 예후가 크게 다를 수 있어서다. 특히 만성 염증성 장질환인 ‘크론병’은 발병 양상이 매우 다양하다. 치료 반응도 천차만별이라 환자 개인별로 맞춤치료가 필요하다.

만성 염증 일으켜 장 기능 약화
성장 속도, 2차 성징 발현 늦고
복통·설사 오래갈 땐 의심해야

소아청소년기 주요 질병
크론병은 장에 만성적으로 염증을 일으켜 장의 기능을 상실하게 한다. 치료가 까다로운 병이다. 장뿐 아니라 피부, 관절, 눈, 간담도, 췌장에도 문제를 동반할 수 있다.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유전적 소인을 지닌 사람에게서 장내 미생물이나 환경적인 요인이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추정한다. 서양에서 자주 발생했지만 최근 20년 동안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국가에서 환자 발생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크론병은 소아청소년 시기에 가장 많이 발병한다. 환자의 10~40%가 진단 당시 성장 장애와 사춘기 지연이 있다. 식욕부진으로 음식 섭취량이 줄고, 장 염증으로 영양소 흡수가 감소한다. 장 출혈이나 설사로 영양소 소실이 증가하는 것이 원인이다. 이로 인해 복통과 만성 설사, 혈변 같은 크론병에서 흔한 증상보단 성장 장애, 사춘기 지연으로 병원을 찾는 환자도 있다.

 아이가 또래에 비해 키가 작고 체중이 덜 나갈 때, 성장 속도가 줄고 2차 성징 발현이 느릴 때, 복통과 설사가 오래갈 때, 항문 주위에 피부 돌기·종기가 발생해 고름을 빼낼 때에는 반드시 크론병을 의심해야 한다. 만성 빈혈과 원인불명의 발열, 관절통, 피부질환이 먼저 나타나거나 주 증상인 경우가 있다. 다른 질병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문제가 있으면 소아 소화기 영양전문의의 진료를 받는 게 좋다.

효과 뛰어난 치료제 개발
크론병은 계속 진행하는 병이다. 염증으로 인한 장의 변화는 치료를 하더라도 정상으로 되돌릴 수 없다. 조기 치료가 중요한 이유다. 치료반응이 좋지 않고 재발도 많다. 치료효과를 자주 평가해 합병증으로 인한 수술을 줄이는 게 최선이다. 소아청소년 환자는 장의 염증을 다스리고 충분한 영양을 공급해 성장 장애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적절한 성장과 사춘기, 영양에 대한 평가를 지속적으로 받아야 한다.

 예전에는 크론병이 치료가 어렵고 삶의 질을 떨어뜨려 환자와 의사에게 고통스러운 질병이었다. 최근엔 생물학적 제제인 ‘항 TNF제제’가 개발됐다. 장 점막의 회복을 돕고 합병증으로 인한 수술 확률을 낮추는 등 좋은 효과를 보인다. 부산대 어린이병원은 소아청소년 염증성 장질환센터를 열어 환자에게 최적의 진료를 제공하고 있다. 진단이 늦어져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던 크론병 소아청소년이 건강을 회복해 진학과 취업을 하고, 면제받을 수 있는 병역 의무를 자원할 때 무한한 기쁨과 감사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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