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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계 돈받고 자리 팔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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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지금까지 소문으로만 떠돌아다니던 '교육계 인사 추문'의 일부가 사실로 확인됐다.

이른바 '좋은 자리'를 둘러싸고 교육자들끼리 수천만원대의 가격까지 정해놓고 '검은 돈'을 주고 받는다는 소문이 검찰 수사과정에서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교육장(시.군교육청)이 되려면 2천만~3천만원이 필요하고, 학무과장으로 나가려면 1천만~2천만원이 든다."

이는 지난 5일 대전지검 천안지청에 구속된 이병학(李炳學.47)충남도 교육위원이 2000년 7월 '인사운동'에 관여했던 H씨(60.당시 모 초교교장.수배 중)에게 건넨 말이다.

李위원은 2000년 7월 초 있었던 충남도교육감 결선투표에서 강복환(姜福煥.65.현 교육감)후보를 밀어주는 대가로 '도내 일부 지역의 인사권을 맡는다'는 각서를 받아 놓은 상태였다.

검찰에 따르면 李위원은 姜씨에게서 받은 이 각서를 '무기 삼아'(영장 표현) 평소 친하게 지내던 H씨에게 곧 자리를 옮겨야 할 도내 3개 지역의 교육장 및 학생회관장 자리에 맞는 사람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이에 H씨는 교육장 역임을 '가문의 영광'(영장 표현)으로 알고 있던 모 중학교 교장 李모(64.구속)씨에게 이 말을 전해줬다. 며칠 후 현금 2천만원이 H씨를 통해 李위원에게 전해졌고 李씨는 곧 '가문의 영광'을 이룰 수 있었다.

李위원은 '남편을 교육청 학무과장이나 교육장으로 내보내려면 자금이 필요하다'며 H씨 부인으로부터 세차례에 걸쳐 1천1백만원을 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H씨는 본인이 희망하던 자리에 발령이 나지 않자 돈을 되돌려받았다. 교육계 중요 자리를 놓고 물건을 흥정하듯 현금을 주고받은 것이다. H씨는 지난 5월 그동안 근무해 오던 모 초등학교 교장직을 사직하고 자취를 감췄다.

李위원은 H씨 등에게 "A란 놈은 누구 덕에 교육장이 됐는데 자리를 함께해도 밥값만 내더라. 내 덕분에 교육장이 된 B씨는 활동비조차 건네주지 않는 등 대접이 소홀하다"고 말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李위원에 대한 영장 범죄사실을 통해 '교육감에게 전권이 주어진 교육청 인사권을 사실상 행사하면서 금품을 수수해오다가 본 건의 범행을 저질렀다'고 적어 추가 비리의 가능성을 내비쳤다.

실제 검찰은 李씨 등이 충남도교육청 산하 각급 학교의 증축공사 비리 등에 개입한 혐의에 대해서도 수사 중이다. 한편 대전지검 천안지청 관계자는 7일 "인사 관련 수뢰 혐의로 지난 3일 李위원을 집에서 긴급 체포할 당시 안방에서 각서를 찾아냈다"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각서는 A4용지 한장 분량으로 1차 투표에서 2위를 한 姜교육감이 3위였던 李위원에게 '결선투표에서 지지해주면 도내 3개 지역 교육청의 인사권을 위임해 주겠다'는 내용으로 돼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각서 진본은 공개하지 않았다.

천안=조한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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