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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서기로 배지 단 의원들, 민생 챙길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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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1호 30면

4·13 총선을 불과 보름 앞두고 있는 여의도 정치판이 공포와 적개심으로 가득하다. ‘살생부’‘복수극’‘공천 학살’‘배신’‘보복’ 등과 같이 조직 폭력배들이나 씀직한 거친 언어가 활개를 친다. 복수로 얼룩진 우리 공당의 부끄러운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 무엇이 우리정치를 위협하는가를 잘 보여준다. 여야가 강조해왔던 공(公)이 강조되는 시스템 공천은 무너지고, 사사로운 원한관계와 계파에 따른 사천(私薦)이 작동될 뿐이다.


20대 공천도 18대, 19대처럼 보복 공천의 흑역사(黑歷史)란 오명을 면치 못하게 됐다. 보복의 주체와 숙청대상이 바뀌었을 뿐이다. 18대 보복의 주체는 ‘친이계’였고, 그 대상은 ‘친박계’였다. 19대는 ‘친박계’가 ‘친이계’를 보복했다. 20대는 ‘진박계’가 ‘비박계’를 숙청한다. 진박계란 박근혜 대통령이 유승민의원을 ‘배신의 정치’라고 비난한 뒤 그 대안으로 제시된 ‘진실한 사람들’을 말한다.


대구 북구을 공천 신청에서 탈락한 김두우 전 홍보수석은 이재오·진영 의원 등 비박계가 공천에서 탈락한 것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에 의한 ‘패권주의적인 친유승민계, 친이명박계 학살 공천’이라고 비난했다. ‘배신죄’와 ‘당 정체성 훼손죄’를 씌워 공천 발표를 미뤄온 유승민 전 원내대표에 대해서는 노골적으로 ‘이쯤하면 알아서 나가야 할 것 아니냐’며 탈당을 압박하고 있다. 유 전 원내대표를 당에서 내모는 모양새로 비칠 경우 새누리당에 대한 역풍이 불수 있고,자칫 공천 탈락자들을 끌어모아 무소속 연대를 결성할 빌미를 주지 않을까 우려할뿐 유 전 대표를 배제하겠다는 마음은 이미 떠났다는게 주변의 관측이다.


더민주당도 ‘사천’이란 점에선 집권여당과 다를 바 없다. 차르처럼 등장한 김종인 비대위 대표는 혁신위까지 구성해 만들어놨던 공천 기준과 경선 룰을 무시한채 친노 패권 청산을 명분으로 현역 ‘물갈이’를 했다. 정세균계 현역의원 다수와 친노계의 핵심인 이해찬 의원, 문희상·신계륜·정청래 의원등 친노무현계 상당수가 공천에서 탈락됐다. 이해찬 의원이 “더민주당 지도부가 명분없이 정무적 판단이라는 정략적인 의도로 저를 배제시켰다. 잘못된 결정을 수용할 수 없다”며 무소속 출마 강행의사를 밝히는등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16일 현재 새누리당에서 공천이 확정된 지역구 후보자 149명중 절반이 넘는 87명(58.4%)이 친박계 후보로 드러났다. 집권당의 후보 공천이 ‘친박근혜당’의 사당으로 정체성이 바뀌었음을 증명한다. 국민들은 의아할 따름이다. 2014년 김무성 대표체제 출범후 새누리당은 입만 열면 ‘보수 혁신’‘공천은 국민의 손으로’‘오픈 프라이머리’를 앵무새처럼 되뇌여오다 선거를 한달여 앞두고 우선추천지역이다, 뭐다 하며 ‘낙하산 공천’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원내 과반수가 넘는 153석을 가진 거대정당이자 국정운영의 공동 책임을 안고 있는 집권당이 법도, 원칙도 무시하고 명분도 없는 ‘묻지마 공천’을 하는 건 유권자를 무시하고 국민을 장기판의 졸로 보는 정치적 폭력 행사나 다름없다. 새누리당이 무슨 염치로 유권자에게 표를 달라고 할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사천은 ‘계파 정당’을 넘어 ‘성숙한 국민공당’으로 발돋움해야 한다는 국민적 여망과 기대를 저버린 전형적인 정치퇴행이다. 『정치질서의 기원』을 쓴 프란시스코 후쿠야마가 언급한 것처럼, 공당의 성격과 공화제적 대통령제 국가를 ‘부족 국가’로 약화시키는 조처다. 또 의원의 자율성 회복에 기반한 의회 민주주의에 반하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기 위한 첫 출발점은 국민의 상식과 눈높이에 맞는 참신하고 능력있는 후보자를 공천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일이다. 그래야 후보들의 됨됨이·노선·정책을 보고 유권자가 판단할 것 아닌가. 하지만 아무런 거리낌없이 특정인과 특정 세력에 의해 사천이 이뤄지는 환경, 공적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은채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공천이 이뤄지는 토양 위에서 민주주의의 꽃이 필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정치퇴행에 따른 국민들의 정치불신과 실망, 그리고 분노도 극에 달하고 있다. 정치 불신은 자칫 투표 불참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여야가 이처럼 힘에 의한 계파 공천을 밀어부치는 이유는 총선 이후 다가올 대선 국면을 관리하기 위한 사전 포석의 성격이 짙다. 당의 근간인 국회의원들에 대한 장악력을 높여 대선 후보 국면에서 각 계파가 선호하거나 미는 후보를 옹립하기 위한 정지작업임을 모르는 국민들은 없다. 친박계가 부작용과 정치적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친박당을 만들려는 것이나 김종인 대표를 주축으로 한 야당 지도부가 자신들의 색채에 맞지 않는 현역의원들을 줄줄이 탈락시키고 있는 것도, 기실 속셈은 똑같다.


문제는 이런 계파공천이 의원들의 자율성을 제약한다는 점이다. 특정 계파에 줄서기를 해서 배지를 달게된다면, 20대 국회가 출범한다 해도 국민의 대표기관으로서 의원의 자율성을 갖고 외부의 간섭없이 책임있게 민생에만 전념하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 계파 공천은 공당의 원리에서 벗어날뿐 아니라 여야를 넘나드는 초당적인 의원간의 토론과 숙의도 방해할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들이 자율성을 갖지 못하고 대통령의 입법과 국정을 대변하거나 계파수장의 당론에 종속된 ‘홍위병’으로 역할한다면, 거기에 따른 시간낭비와 기회비용의 손실은 고스란히 국민들의 피해로 전가될 수 밖에 없다.


계파 공천과 제왕적 대통령제로의 회귀는 우리 민주주의 수준이 부족국가 수준으로, 로버트 달이 말하는 ‘절차적 민주주의’단계에서 아직 벗어나고 있지 못함을 보여준다. 달은 ‘효과적인 유권자의 참여’를 보장하는 가운데 ‘정치 엘리트의 실질적인 경쟁’이 될 때 절차적 민주주의가 가능하다고 보았다. 효과적인 참여와 경쟁이 되기 위해서는 ‘공천권의 민주화’가 필수적이고, 유권자의 자유로운 공천 참여와 상시적인 선거운동이 보장돼야 한다. 그러려면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주는 조치, 완전국민경선제 도입이 선행돼야 한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계파공천 갈등은 역설적으로 오픈 프라이머리의 법제화에 대한 필요성을 더욱 크게 느끼게 한다.


채진원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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