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새누리당 공천위, 유승민한테 결단하라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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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새누리당의 공천 파행은 시작에서 끝까지 ‘유승민 문제’였다. 이 문제가 매듭 지어져야 새누리의 선거 일정이 한 발짝 나아갈 것이다. 당이 해결해야 할 유승민 문제는 두 가지다. 첫째는 내용 면에서 그에게 경선 기회를 줄 것이냐 말 것이냐다. 둘째는 시기 면에서 그 결정을 언제 할 것이냐다. 그런데 새누리당은 이 두 가지 문제를 다 뭉개고 엉뚱하게 3번 문제를 냈다. 유승민 의원 스스로 자신의 진퇴를 결정하라고 한 것이다. 비상식적이고 무책임하다. 공천 기간 내내 ‘청와대의 보이지 않는 손’을 의식하느라 그랬는지 무원칙하고 보복정치적 행태를 보여 온 이한구 위원장이 어제 또 이상한 말을 했다. 지역구 공천을 모두 끝냈으면서도 유독 유승민 의원에 대해서만 나흘째 판정을 보류하더니 “유 의원, 이제 스스로 거취를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이한구의 공천관리위원회는 그동안 253곳 모든 선거구를 도마에 올려놓고 자기들 방식대로 칼질을 했다. 좋은 요리가 나왔는지 못 먹을 음식이 나왔는지 평가는 분분하지만 칼질의 주체가 당 공천위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각 선거구의 현역 의원을 비롯한 예비후보들은 공천 칼날을 받는 객체들이다. 왜 유독 유승민 선거구(대구 동을)에 대해서만 칼질을 중단하는가. 왜 공천권 행사의 객체인 유 의원에게 주체가 되라고 요구하는가. 결국 제 목을 스스로 치라는 압박인 셈이다. 아무리 비정하고 냉혹한 정치 세계라 해도 이럴 수는 없다고 본다.

공천위가 대구 동을의 결정만 미룬 데엔 ‘유승민 탈락’을 공식화할 경우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반발과 유 의원에 대한 동정 심리가 북상(北上)해 수도권 선거를 망칠 수 있다는 선거공학적 우려가 깔렸다. 공천위가 이 문제를 최고위원회의에 넘긴 것도, 공천위나 최고위 내부에서 최종 결정을 자꾸 늦추는 것도 결국 나중에 뒤집어쓸지 모를 책임론 때문이다. 칼을 휘두르면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 이한구 위원장이나 새누리당 최고위원회는 하루빨리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자세로 유승민 문제를 풀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