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후진타오 '다변과 과묵'의 만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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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57) 대통령과 중국 후진타오(胡錦濤.61) 국가주석의 7일 정상회담은 북핵과 양국 경제 협력의 현안 외에 중국의 4세대 지도자와 전후세대 한국 지도자의 첫 만남이라는 점에서 외교가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盧대통령은 胡주석이 새 지도자로 연착륙한 계기가 된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 사태 극복 이후 처음 중국을 찾는 외국 정상이다. 때문에 胡주석 측은 盧대통령의 방중을 "전 세계에 자신의 이미지를 확고히 각인시킬 외교 무대"로 삼기 위해 치밀한 준비를 해왔다. 盧대통령으로서도 미.일 방문을 통해 빚어진 북핵 문제에 대한 혼선을 정리해야 할 상황이다.

당장 현안인 북핵과 관련, '실용주의적 개혁.개방'의 신사고를 내세워 온 胡주석이 현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 체제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또 한.일 등이 참여하는 다자회담의 틀 안으로 끌어들여 달라는 盧대통령의 부탁에 어느 정도 협력할지가 회담의 최대 관건일 수밖에 없다.

중국 측이 줄곧 제기해 온 '무역역조 시정'에 맞서 한.중.일 공동 번영을 위한 우리 측의 '동북아 중심국가'구상을 반발 없이 설명해 윈-윈 경협을 이끌어 내는 것도 과제다.

이와 관련, "말이 많으면 반드시 잃는 게 많다(言多必失)"며 최대한 말을 자제하는 스타일인 胡주석을 다변(多辯).토론 이미지의 盧대통령이 어떻게 설득해 북핵 문제 해결을 이끌어낼지도 관심이다. 胡주석은 티베트 자치구 당서기 시절 티베트의 독립운동을 확실히 진압하면서 권부의 핵심에 진입했다.

때문에 盧대통령이 중국이 예민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까다로운 달라이 라마와 대만 문제에 대해 湖주석과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갈지도 주목된다. 이 대목은 아직 미정인 공동 성명 채택 여부의 관건이기도 하다.

'후진타오 인맥'사귀기도 盧대통령이 안은 숙제다. 盧대통령은 역대 대통령과 달리 베이징(北京)대가 아닌 칭화(淸華)대를 연설 장소로 택했다. 중국 권력의 핵인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9명 중 4명(胡주석.우방궈 전인대 상무위원장.황쥐 상하이시 서기.우관정 산둥성 서기)이 칭화대 출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 중앙군사위 주석으로 아직 '군권(軍權)'을 쥐고 있는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盧대통령과 江전주석의 만남은 과거의 깊은 관계 없이는 외빈을 만나지 않는 江전주석의 스타일 때문에 이뤄지지 않게 됐다. 대신 盧대통령은 江전주석의 오른팔이자 胡주석을 견제해 온 태자당(太子黨.혁명 원로들의 자제) 세력의 주축인 쩡칭훙(曾慶紅) 국가부주석과의 단독 면담을 통해 다양한 인맥관리에 나설 예정이다.
최훈 기자choi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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