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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땅 속에서 64년…전우 유해라도 보고 싶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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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1953년 7월 13일 새벽 3시, 어둠 속 폭우를 뚫고 갑자기 피리소리가 들렸어. 중공군의 진격 신호였지. 비상이 걸렸고 참호에서 전방을 주시하던 나는 점점 커지는 피리소리에 심장이 쿵쾅거렸어. 중공군이 시야에 들어오자 일제히 총을 쏘고 포탄을 날렸어. 우리가 총알을 교체할 때면 중공군이 기관총과 포를 쏴댔지. 그렇게 하루를 버티던 중 적의 포탄이 2년간 나와 함께 한 부사수 안은준(당시 21세) 하사의 참호에 떨어졌어. 안 하사가 숨졌지만 나는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어. 중공군의 공격이 사흘 밤낮없이 계속됐고 결국 우리는 후퇴했지. 앞만 보며 정신없이 내달리는데 사방에서 전우의 비명이 끊이질 않았어.”

부산·경남 지역 6·25 참전 노병 80명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증언 참여

6·25전쟁 당시 3사단 23연대 2대대 소속으로 ‘여문리 부근 전투’에 참전한 조규남(83)씨의 증언이다. 경북 영천 출신인 그는 17세이던 50년 7월 입대했다. 52년 9월 강원도 양구 가칠봉 지역에서 독수리고지·피의고지 전투, 53년 6월 529고지 전투 등을 치렀다. 전쟁 막바지에는 여문리 부근 949고지 전투에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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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용사인 김희호(9사단)·전종권(8240부대)·이동복(6사단)·조규남(3사단)·정석현(21사단)씨가 당시 전투지역을 살펴보고 있다(왼쪽부터). [사진 송봉근 기자]

국방부에 따르면 여문리 부근 전투에서 국군 134명이 전사했다. 조씨는 이들 대부분이 949 고지에 묻혀 있을 것이라고 증언했다. 그는 “당시 안 하사의 시신을 수습하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 된다. 죽기 전에 그의 유해라도 볼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국군 2사단 31연대 3대대 소속으로 중공군 45사단에 맞서 6주간의 저격능선 전투(52년10월~11월)에 참전한 김광빈(83)·김남현(89)씨의 증언도 이어졌다.

당시 일등중사였던 김광빈씨는 “우리가 있던 598고지는 중공군에겐 중부전선의 최후 거점이고, 우리에겐 중공군이 철원평야로 넘어오지 못하게 막을 수 있는 요충지여서 전투가 치열했다”고 회상했다. 이들은 “차가운 땅 속에서 64년째 기다릴 전우를 하루빨리 조국과 가족의 품에 데려와 달라”고 호소했다.

이들 노병들의 증언은 17일 오전 부산 초량동의 한 빌딩에서 동영상으로 촬영됐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의 증언 요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날 부산·경남지역의 노병 80여 명이 참여했다. 증언은 모두 영상으로 제작되고 문서로도 기록됐다. 군은 이를 유해발굴에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올해 발굴은 오는 21일부터 11월까지 연 10만 명을 투입해 진행한다.

군은 2004년 4월부터 최근까지 9100여 위(位)의 유해를 발굴했다. 이들 중 신원이 확인된 109명만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군은 현재 12만4000여 위가 아직도 어딘가에 묻혀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학기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장(대령)은 “참전용사의 평균 연세가 85세”라며 “더 늦기 전에 노병들의 생생한 증언을 활용해 마지막 전사자 한 분까지 찾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부산=황선윤·유명한 기자 famous@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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