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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vs 인간 창조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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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채인택
채인택 기자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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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
논설위원

프로기사 이세돌 9단과 구글 딥마인드의 인공지능(AI) 알파고가 벌인 반상의 대결로 지난 며칠이 뜨거웠다. 하지만 알파고가 아니더라도 2016년의 최대 키워드는 AI가 될 수밖에 없다. 이미 지난 1월 6~11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렸던 세계 최대 규모의 가전전시회 ‘CES 2016’에서도 주인공은 AI였다. 가전전시회였지만 스마트카·로봇·스마트홈·사물인터넷 등 AI 기술을 적용해 인간의 조작 없이도 알아서 척척 움직이는 자동기기가 혁신의 흐름을 주도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지난 1월 18일 발표한 ‘미래의 직업’ 보고서는 AI 발달에 따른 자동화 등으로 2020년까지 5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일자리 710만 개가 사라지고 210만 개가 새로 생겨 결과적으로 500만 개가 감소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다. 이쯤 되면 AI는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는 부정적 이미지로 비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일자리의 숫자가 아니라 품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내용을 곰곰이 따져보면 단순 공정의 일자리는 줄어드는 대신 인간 창조력이 필요한 기술과 전문 분야 서비스 및 미디어 분야 일자리가 새로 생길 것이라는 전망이다. 진짜 중요한 것은 AI로 인한 노동 분야 변화를 미리 예상하고 대비하는 자세일 것이다.

사실 AI는 그동안 부정적인 이미지가 대세였다. ‘터미네이터’ 시리즈, ‘오블리비언’ ‘트랜센던스’ 같은 할리우드 영화에선 인류를 위협하는 새로운 악당이 AI였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선과 악은 감정에 기반하므로 감정이 없는 AI가 천사는 물론 악당이 되기도 어렵다는 반론이 만만치 않다. 알파고만 해도 수학적 판단에 따라 바둑알을 놓을 뿐 승부에 대한 감정은 없다. 물론 가보지 않은 길이 어떨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비관하기에는 너무 이른 상황이다.

AI는 핵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핵은 인간이 제대로만 통제하면 무한한 에너지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통제 범위에서 벗어나는 순간 후쿠시마 같은 의외의 비극이 생길 수도 있다. 따라서 만의 하나를 대비해 인공지능을 철저하게 인간의 통제 아래 두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이미 지난해 1월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와 테슬라자동차의 일론 머스크를 비롯한 유명인사들이 ‘AI에 보내는 공개서한’을 발표하고 이런 노력을 촉구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이들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것은 개발하지 않는 결단’을 예방법으로 제시했다.

AI 등 새롭게 등장하는 첨단기술을 통제하는 방법은 끊임없는 혁신적 연구개발로 인간이 과학기술 혁신의 이니셔티브를 쥐는 것이다. AI가 관심사가 됐다고 갑자기 연구예산을 편성하는 즉흥 대응보다 AI를 넘어선 다양한 혁신적 과학기술 주제를 과학자들이 자연스럽게 연구할 수 있도록 여건과 환경을 제공하는 게 중요하다. AI 말고도 놀라운 과학기술은 숱하다.

마침 지난주 독일 연방정부 학술교류처(DAAAD) 초청으로 옛 동독 지역의 연구와 혁신 현장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놀라운 것은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기술을 자랑하는 독일이 2006년 ‘첨단기술 전략’, 2010년 ‘첨단기술 전략 2020’, 2014년에는 ‘새로운 첨단기술 전략’ 등 일관되고 지속적인 첨단기술 전략을 끊임없이 추진해 왔다는 사실이다. 혁신 선도국가의 지위를 계속 유지하기 위한 적극적인 투자와 노력은 산학연 현장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독일 연방정부는 이 기간 동안 매년 연구개발비 총액을 5~10% 늘려온 것은 물론 증액분의 상당 부분을 첨단기술 개발에 전략적으로 배분해 왔다. 독일 연방정부 교육연구부의 옛 동독 지역 혁신이니셔티브 담당관인 크리스토프 바네크 박사는 “대학·연구소·기업을 묶어 산학연 공동연구를 진행하게 하는 혁신 클러스터를 옛 동독 지역에 꾸준히 세우고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나노기술, 초정밀 광학, 신세대 의료기기, 자원 재활용 등 혁신적인 과학기술 연구과제가 다양하게 연구되고 있다. 하지만 인기 과학 주제를 연구할 긴급 예산을 편성하는 일은 볼 수 없었다. 과학기술 혁신 연구 투자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꾸준하게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그 결과물을 인간이 마음껏 통제할 수 있다. 아무리 AI 연구가 시대의 과제라도 급하면 체한다.

채인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