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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는 정말 한국 교육을 짝사랑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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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양영유
양영유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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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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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한국의 교육에 대해선 유독 평가가 박했다. 교육 현장을 한창 취재하던 2007년 들었던 그의 말이 인류를 강타한 인공지능(AI) ‘알파고 현상’ 덕에 요즘 더 생생하게 떠오른다. 요지는 이랬다. “한국의 학생들은 하루 10시간 이상을 학교와 학원에서 미래에 필요하지 않을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시간을 허비한다. 한국 교육은 공장에서 시뮬레이션 작업을 하는 것과 같아 결과적으론 공장 인력을 만드는 일에 불과하다.”

당시 ‘송곳’으로 가슴을 찔린 듯했다. 아이들의 꿈과 끼를 살려주지 못하는 획일적 관치(官治) 교육의 환부를 콕 짚었기 때문이다. 국가의 미래는 교육에 달려 있으니 창의성을 질식시키는 붕어빵 교육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그의 처방에 고개가 숙여졌다.

그런데 의외의 반전이 생겼다. 2009년 취임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토플러와는 정반대로 우리 교육을 칭송한 것이다. 의회 연설과 타운홀 미팅, 학교 현장 방문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랬다. 알려진 것만도 스무 번 가까이 된다. “한국의 아이들은 비디오 게임이나 TV를 보는 데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수학·과학·외국어를 공부한다”(2009년), “미국 학생들은 약 30%만 교실에서 고속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데 한국 같은 나라는 100%다”(2014년), “한국 교사의 급여는 의사 수준이고 존경도 받는다”(2015년)며 부러워했다.

진위와 관계없이 교육부는 좋아했다. 하지만 정말 그럴 자격이 있을까.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세계 최장의 학습시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청소년 자살률 1위, 사교육에 좌우되는 학생들의 실력, 유학생 9만 명이 연간 23억 달러를 미국에 갖다 바치는 현실…. 오바마는 이런 우리의 후진적 교육 생태계를 알고도 교육열을 높이 사 부러워한 것일까.

그런데 정말 우리가 부러워할 일이 생겼다. 오바마 내외의 교육 짝짜꿍이다. 두 딸의 엄마인 미셸 오바마는 교육 전도사를 자처한다. 래퍼로 변신해 “꿈을 현실로 바꾸려면 대학에 가라”며 춤을 추며 뮤직 비디오까지 찍었다. 대학 진학률이 40%대에 머물자 “성공하려면 공부하라”는 캠페인을 벌인 데 이은 또 다른 파격이다. 우리로선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임기 말년에 오바마는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13년 전 주창했던 ‘낙제학생방지법(No Child Left Behind Act)’을 포기하고 ‘모든 학생 성공법(Every Student Succeeds Act)’에 서명했다. 획일적 평준화 교육의 한계를 시인하고 학생·학부모·학교의 자율성 확대를 통한 창의 교육으로 패러다임을 바꾼 것이다.

그의 최근 라디오 연설 동영상을 보니 현장에서 왜 공감하는지 알 것 같았다. 소프트웨어(SW) 교육에 4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모두를 위한 컴퓨터 과학(Computer Science for All)’ 프로젝트에 대한 감성적인 설명이 콕콕 와 닿았다. “자동차 정비공들은 단순히 오일만 가는 게 아니다. 우주비행선 관련 코드보다 100배나 많은 1억 줄의 소스코드를 보면서 일한다”는 대목이 특히 그렇다. 실행계획도 뚜렷하다. 정부뿐만 아니라 주지사, 시장, 국립과학재단, 구글, 세일즈포스, 코딩교육 단체와 함께 진행하고 교사도 확보하겠다고 했다. 2년 전 요란하게 ‘SW 중심사회 원년’을 선포하고도 교사조차 제대로 확보 못한 우리와는 대조적이다. 부러워할 대상은 바로 미국 교육 아닌가.

오바마가 정말 한국 교육을 짝사랑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지만 중요한 건 우리 현실이다. 토플러가 적폐로 지목한 붕어빵 교육을 탈피하지 못하는데 알파고를 개발한 데미스 허사비스 같은 인물이 나올 수 있겠는가. 교수 출신 교육부 장차관은 물러나면 그만이고, 관료들은 영혼 없이 움직이며 헛바퀴만 돌리고 있는 탓이 크다. 이때 필요한 게 대통령의 열정과 뚝심이다. 학부모 마음으로 현장을 찾고, 도전과 탐구 정신을 불어 넣고, SW 교육에 힘을 실어주면 오바마가 진짜 부러워할지 모른다. 토플러의 9년 전 송곳이 알파고보다 더 가슴을 저미게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양영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