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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中과 다른 길' 시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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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중국의 행정 특구인 홍콩의 자치(自治)가 실험대에 올랐다. '홍콩판 국가보안법'으로 불리는 국가안전 조례의 입법 여부 때문이다.

홍콩의 총리 격인 둥젠화(董建華) 행정수반은 7일 침통한 표정으로 "오는 9일로 예정됐던 입법회의의 국가안전 조례 법안 심사를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홍콩 자유당의 톈베이쥔(田北俊) 총재가 "이 법안의 심사를 연기해야 한다"고 촉구한 뒤 董내각을 지탱하는 '행정회의'를 전격 탈퇴했기 때문이다. 자유당은 친중.반중으로 갈라진 홍콩의 정치판에서 중도 노선을 지키면서 둥젠화 내각을 지지해 왔다.

田총재는 지난 1일 홍콩인 50만명이 가두시위를 벌인 뒤 3일부터 이틀간 베이징(北京)을 다녀왔다. 그는 중국 지도부에게 '입법 연기'를 호소했다고 한다. 田총재의 거사는 정계 구도를 단숨에 바꿔놓았다.

먼저 입법회의(의석 60석)에서 수적 열세였던 '입법 반대파'가 과반인 31석을 차지하게 됐다. 자유당은 의석 수가 8석에 불과하나 지금까지 친중 정당인 민건련.항진련 등과 보조를 맞춰왔다.

더욱이 내각과 입법회의를 연결하는 행정회의에서 자유당이 이탈하는 바람에 홍콩은 내각 붕괴와 비슷한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이에 따라 관심은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과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에게 쏠리고 있다. 두 사람은 각각 "국가안전 조례가 통과돼도 홍콩의 자유.자치엔 절대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다짐해 왔다.

胡주석은 최근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최고 권력기관인 정치국 상무위원회에서 이 문제를 집중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홍콩 언론들은 "공산당 내부의 보수파들이 입법 강행을 주장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각에선 이번 입법 파동을 통해 중국의 '홍콩 자치'보장 약속이 크게 상처를 입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거 덩샤오핑(鄧小平)은 영국에서 홍콩을 돌려받을 때 "홍콩인이 홍콩을 다스린다" "홍콩의 각종 제도를 50년간 유지한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홍콩은 그동안 반체제 인사를 단속하거나 파룬궁(法輪功) 수련생들의 입국 제한 등 중국의 입김을 의식한 행보를 해왔다. 이번 국가안전 조례 파동 역시 홍콩을 중국화하려는 사례 중 하나라는 것이다.

홍콩=이양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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