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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시리아서 철군” 깜짝 발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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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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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드 푸틴

러시아가 14일(현지시간) 시리아에서 철군한다고 깜짝 발표했다. 공습 참여 6개월 만이다. 마침 스위스 제네바에선 시리아 평화를 위한 회담이 시작된 날이었다.

참전 6개월 만에 “목표 다 이뤄”
미국 “무슨 의도인지 따져봐야”

블라디미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날 “시리아에 러시아 군대를 투입한 목표를 달성했다”며 “15일부터 시리아에 있는 주요 병력을 철수하라”고 명령했다고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이 전했다. 푸틴은 “러시아가 시리아 분쟁을 끝내고 평화를 정착하는 역할에 집중하라”는 지시도 했다. 다만 시리아 내 러시아 공군 기지는 휴전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푸틴은 이 사실을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에게 통보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도 이후 통화했다. 영국 BBC 방송은 “뜻밖의 철군”이라고 표현했다.

푸틴의 철군은 다목적 카드다. 그의 말대로 목표를 달성한 측면이 있다. 자신과 가까운 알아사드 정권은 러시아의 공습 전엔 패퇴를 거듭했고 붕괴 직전까지 몰렸다. 9월 공습 이후엔 1만㎢의 실지(失地)를 회복했고 지금은 우위인 상태다. 러시아가 테러 집단을 공습한다면서도 실제 시리아 온건 반군을 공격했기 때문이란 게 서방의 의심이다. 러시아는 그 사이 중동에서의 영향력을 확보했다.

알아사드 압박용이란 해석도 있다. 러시아도 6년째에 접어든 시리아 내전을 끝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알아사드가 평화 논의에서 배제돼선 안 되지만 그렇다고 알아사드가 계속 집권해야 한다는 쪽도 아니다. 알아사드는 이 안마저도 거부하고 있다. 미국 워싱턴 근동정책연구소의 앤드류 태들러 연구원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날 발표는 모스크바가 알아사드와 갈라설 수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장기전도 피할 수 있게 됐다. 과거 아프가니스탄에서처럼 자칫 이도 저도 못하고 분쟁의 수렁에서 빠져들 수도 있었다. 유가 하락으로 인한 재정난 속에서 전쟁을 계속 치르기도 부담이었다.

서구에선 조심스럽게 환영했다. 러시아가 언제든 말을 뒤집을 수 있다고 봐서다. 조시 어니스트 미국 백악관 대변인은 “러시아의 의도가 무엇인지 정확히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재개된 제네바 회담에서 스테판 드 미스투라 유엔 시리아 특사는 “시리아의 정치 권력을 이양하는 데 합의하는 것이 이번 회담의 핵심”이라며 “평화 외엔 ‘플랜B’(대안)는 없다”고 했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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