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운용 훼방說' 파문 확산] 김운용 위원의 功過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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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스포츠계는 김운용(72) IOC 위원을 '공과 (功過)가 확연히 드러나는 인물'로 평가한다.

金위원은 제3공화국 시절 국방부 장관 보좌관.대통령 경호실 보좌관을 거친 뒤 40세이던 1971년 대한태권도협회장에 올라 태권도의 세계화를 주도했고, 오늘날 태권도를 올림픽 종목으로 만든 일등공신이다.

86년 IOC 위원에 선임된 金위원은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의 성공에도 기여했다.

92년에는 IOC 부위원장에 당선됐고, 2001년에는 아시아인으로는 처음으로 위원장에 도전해 자크 로게 현 위원장에게 패했지만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번에 다시 부위원장에 당선된 것은 그가 IOC 내에서 여전히 카리스마와 영향력을 잃지 않았다는 증거다. 사실 제3세계 출신으로, 서구 세력이 득세하는 국제 스포츠계에서 이 정도로 입지를 굳히기는 쉽지 않다.

국제경기연맹총연합회(GAISF)회장과 세계태권도연맹(WTF)총재이기도 한 金위원은 그러나 2002솔트레이크시티 겨울올림픽을 앞두고 뇌물 스캔들이 터지면서 스타일을 구겼다. 金위원은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 뇌물 사건에 연루돼 99년 3월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108차 IOC 임시총회에서 비록 제명당하지는 않았지만 경고 등급 중 가장 센 '엄중경고'를 받았다. 장 클로드 강가(콩고), 아구스틴 카를로스 아로요(에콰도르) 등 제명된 6명의 IOC 위원이 金위원과 친밀한 인사들이어서 사마란치 이후 위원장 자리에 도전하려던 金위원은 타격을 받았다. 당시 金위원은 "IOC 내의 파벌 다툼 과정에서 생긴 일"이라며 "나는 남에게 선물을 준 적은 많지만 뇌물을 받은 적은 없다"고 주장했다.

金위원의 아들 존 김(44.한국명 김정훈)도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조직위원회에 취직한 스캔들에 연루돼 있다. 金씨는 99년 '영주권 부정 취득'과 '허위 진술' 혐의로 미국 이스트 브루클린 검찰에 의해 기소된 상태에서 지난 5월 18일 불가리아 소피아 공항에서 인터폴에 체포됐고, 오는 10월 28일 미국에서 재판을 받을 예정이다.

태권도계에서도 金위원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2001년 4월 국가대표 선발전 때 편파 판정 시비가 일자 태권도인들은 "태권도계가 너무 썩었다. 개혁해야 한다"고 들고 일어나 결국 金위원은 태권도협회장과 국기원장직에서 물러났다(최근 국기원장에는 복귀했다). 태권도계 일각에서는 "승단심사비 등으로 매년 60억원가량의 큰 돈이 들어오는 곳이 바로 국기원인데, 이곳의 운영이 복마전과 다름없다"는 말도 한다.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를 金위원이 방해했다는 한나라당 김용학 의원의 폭로 이후 온사회가 시끌벅적하지만 정작 국내 체육계는 침묵하고 있다. 金위원은 93년부터 지난해까지 체육계의 수장으로 있었던 대부며, 그의 영향력 하에 있는 사람들이 여전히 일선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프라하에 동행했던 이연택 대한체육회장은 7일 "뭐라고 말하기 곤란하다"며 "평창 유치위 쪽에 물어보라"고 했다. 대한체육회 직원들도 "마음 고생이 많다"면서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金위원과 호형호제하는 사이로, 프라하 총회 때 유치위원으로 참여했던 한 체육계 인사는 당시 취재기자들을 붙잡고 "부위원장 선거 이야기를 꺼내면 불같이 화를 내며 말도 못하게 한다. 당신들이 대신 좀 알아보라"고 말하기도 했다.

체육계의 한 중진은 "金위원의 카리스마가 대단하기 때문에 누구도 충언을 할 수 없었을 것"이라면서 "결국 이번 사태는 金위원이 주변 사람들의 충고를 듣지 않아 빚어진 일"이라고 했다.

성백유 기자 <carolina@joongang.co.kr>
사진=조용철 기자 <youngc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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