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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혁 칼럼] 이젠 '正常정부'로 가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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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생각해 보면 지난 넉달 동안 노무현 정부는 '실험정부'의 성격이 강했다. 盧정부는 출범 이후 여러가지 국정실험을 해 왔다. 한.미관계를 실험했고 친노(親勞)실험도 해 봤다.

386실험.코드실험도 진행 중이다. 그러나 결과는 다 아는 바와 같다. 한.미 관계를 흔들었다가 황급히 복구에 나섰지만 아직도 불안요소가 감돌고 있고, 노조를 감싸는 친노실험 역시 법과 타협 사이를 오락가락하다가 국민적 비판에 직면했다. 386과 코드실험은 청와대의 기강해이, 정부 내 팀워크 혼선 등을 일으키면서 아마추어리즘이란 비판을 받고 있다.

*** 元老들의 꾸지람에 담긴 의미

이런 국정실험의 실패로 盧정부에 대한 위기 신호가 사방에서 울리고 있다. 얼마 전 김수환(金壽煥)추기경은 "盧대통령이 이 난국을 타개할 능력이 있는지 본질적인 의문이 생긴다"고 했다. 강원용(姜元龍)목사는 "盧대통령이 늦어도 9월 이전에 달라져야 한다"면서 이대로 가면 내년 총선 패배로 바로 레임덕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남덕우(南悳祐) 전 국무총리는 현재의 경제상황을 '비경제적 요인'에 의한 위기라고 진단하면서 혼란과 무질서를 마치 탈(脫)권위주의 과정처럼 보고 있다고 아프게 지적했다.

원로들의 이런 꾸지람은 단순한 정책 실패를 나무라는 차원이 아니다. 그보다는 집권자의 자질과 능력과 의도에 대한 의심과 불신이라는 점에서 심각성이 더 크다. 말을 믿을 수 없다는 신뢰성의 위기, 코드론에 따른 정실주의와 패거리 경향, 능력이 의심되는 아마추어리즘 등이 본질적인 문제점으로 제기되고 있다. 盧대통령에 대한 충고를 봐도 "말을 믿게 하라" "싫은 신문도 읽어라" "약속을 지켜라"…따위가 대부분이다. 어찌 보면 어린이를 타이를 때나 할 법한 말들이다. 대한민국쯤 되는 나라의 대통령에 대한 충고가 이런 수준, 이런 내용이라는 것 하나만 봐도 문제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이러고서야 정부의 힘이나 위신이 설 리가 없다. 압력집단들이 공공연하게 대통령을 공격하고, 심지어 협박하는 것이 다반사가 되고 있다. 요즘 보면 국내 외국인들까지 정부의 경제-노동정책을 내놓고 비판한다. 과묵하던 청와대 비서실의 2인자가 오랜만에 네덜란드형(型) 노사 관계를 제시하자 바로 다음날 국내 유럽기업인들이 "한국엔 안맞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일본 기업인 대표는 대통령에게 편지까지 보내 국가 이미지를 바꾸라고 충고했다. 다 고마운 충고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그들에게 얼마나 얕보이고 딱하게 여겨지고 있는가 하는 씁쓸한 기분이 없을 수가 없다. 외국인들까지도 우리 대통령을 가르치려는(?) 상황이랄까.

더 이상 이런 상태로 갈 수는 없다. 이젠 실패로 끝난 국정실험은 그만해야 한다. 국정이 실험 대상일 수도 없고 정부나 공직이 특정그룹의 학습장일 수도 없다. 이제는 '실험정부'가 아니라 '정상정부'로 가야 한다. 정상(正常)이란 말뜻이 명확지 않은 것 같지만 우리 공동체가 합의하고 존중하는 것, 국민 다수가 당연하다고 믿고 있는 것, 그런 것이 정상일 것이다.

법치.대의민주주의.여론존중.품위.신뢰…이런 것들이 기준이 되고 중심 내용이 되는 것이 정상정부일 것이다. 튀고, 까불고, 유별나고, 편향되고 하는 요소들은 이제 좀 털어야 한다. 예를 들어 코드가 맞아 기용하는 것이 실험정부라면 능력을 보고 기용하는 것이 정상정부다. 대통령의 막말이 탈 권위의 실험이 될진 모르나 정중한 언어로 가자는 것이 정상정부다. 친노가 정책 목표가 될 수는 있지만 법치와 정부의 중립성을 더 상위(上位)개념으로 보는 것이 정상정부다.

*** 주목되는 9월, 긍정변화 기대

당선자 기간 두달을 합치면 盧정부도 6개월이 넘었다. 지금쯤 정부의 어떤 점, 어떤 인물, 어떤 방식이 문제인지 대략 파악할 만한 기간이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이제 '정상정부'로 나가길 바란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9월을 말하고 있다. 姜목사는 盧정부의 변화 시한을 9월로 보면서 벌써 레임덕 가능성을 경고했다. 홍사덕(洪思德) 야당 총무도 盧정부를 9월까지 보고 '대규모 구상'을 할 것이라고 했다. 신당파.탈당파들의 신당 작업도 9월 등장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 9월의 새 정치지형(地形)을 盧정부도 정상정부의 새 모습으로 맞아야 할 것이다.

송진혁 논설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