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론 택배 시대에도 끄떡없을 직업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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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론 배달 시대가 와도 우리는 살아 남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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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청계천 6가 동대문종합시장 일대를 무대로 33년 째 '지게 배달'을 하고 있는 최 모씨(79)는 첨단화돼 가는 '배송혁신'에 직업이 사라질 수 있지 않느냐는 물음에 이처럼 말했다. 동대문 종합시장은 원단과 악세사리등 5300여 개의 크고 작은 점포가 밀집해 있다.국내 최대의 '원단부자재시장'이며 종사자만 5만명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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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이곳에서 지게업으로 삶의 터전을 일구고 사는 사람들은 줄잡아 40여 명. 섬유원단시장의 활황기인 90년대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이 일대에서는 100여 명의 사람들이 지게에 삶을 의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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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이 고향인 최 할아버지는 20대에 상경해 인천에 정착했다. 어느 날 동대문 일대에서 서성거리다 지게를 지고 일하는 사람들을 보고 기게꾼으로 나섰다. 고향에서 많이 경험했던 터라 자신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렇게 시작한 '지게배송'이 최 씨의 천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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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을 한 해 앞둔 최 할아버지는 "많은 사람들이 직업 때문에 몸이 망가지지만 저는 오히려 직업 때문에 돈도 벌고 건강도 유지하고 있다"며"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지게를 지겠다"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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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지게를 질 수 있다고 아무나 '영업'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게꾼들의 영업점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은 A지역(청계천 버들다리 앞), B 지역(종합시장 남쪽 측면)그리고 C지역(동대문 메리어트 호텔 맞은 편) 등 3개 그룹으로 '영역'이 나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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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성은 없지만 이곳에서 짐을 나르는 사람들은 조합원으로 구성돼 있다. '영역'을 확보하고 있는 이들은 자동차로 배송돼 온 각종 원단을 종합시장 안으로 옮기며 물류의 마지막 단계를 처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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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영업시간은 새벽 5시부터 오후 7시. 하지만 모두가 출퇴근 시간을 정확히 지키는 사람은 없다. 각자 '일인사장'의 지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업무의 시작과 끝은 자율이다.또 그들의 영업은 철저히 순번이다. 특별히 무거운 짐은 젊은 사람이 '자진'해서 지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수입까지 많은 건 아니다. 수입은 일찍 출근해서 늦게 퇴근하는 사람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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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반비는 3층 기준 기본 4천 원. 하지만 그 이상 올라가거나 무게가 무거울 경우는 1000원의 할증이 발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할증료를 업체 측이 주면 받고 그렇지 않으면 억지로 요구하지 않는다. 이런 '선심'은 일종의 거래처 관리라고 귀띔 한다.

20년 전에는 친구들에게 내가 술을 샀지. 그때는 물량도 많았고 몸도 젊어 수입이 지금보다 3배는 좋았어..."

지게 하나에 권리금 3000만 원을 주고 이 일을 시작한 김(60)모씨는 중국의 영향으로 원단시장 상황이 위축되면서 배송물량이 줄어 수입이 예전 같지 못하다고 말했다. 20년 전에는 벌이가 좋아 이곳에 일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권리금을 주고 들어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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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가장 젊은 사람은 40대 후반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학원 강사로 첫 직업을 시작한 황모씨. 그는 강의가 없는 낮에 아르바이트로 부수입을 벌기 위해 지게를 지기 시작했다. 낮에는 지게를 지고 밤에는 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하지만 지게 일에 '탄력'이 붙으면서 학원강사는 그만뒀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지만 지게일이 묘하게 끌렸다.

단순 노동이지만 마음이 편했어요. 지시받고 목표치를 달성해야 하는 일이 맞지 않았나 봐요. 마음 가는 대로 몸은 가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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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칼라 학원강사의 자리를 박차고 나온지도 어언 15년이 흘렸지만 황씨는 자신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만 빼면 후회한 적은 없다"고 했다.

사진·글=김상선 기자(s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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