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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어둠을 밝혀주듯 어둠은 빛을 보여주죠”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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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0호 18면

20년간 서울에서 자신이 누군지도 잊고 살아온 북한 간첩이 어느 날 갑자기 귀환 명령을 받는다. 실체 없는 추적자를 따돌리며 삶을 추스르는 ‘무늬만 스파이’의 긴박한 하루를 영화처럼 그린 김영하의 소설 『빛의 제국』이 연극 무대에 올랐다(27일까지 명동예술극장).?무대를 감싸는 2개의 대형 스크린에 소설의 스토리를 따라가는 한 편의 무성영화(?)가 펼쳐지고, 문소리·지현준 등 무대 위 배우들은 더빙을 위해 녹음실에 모여 앉은 모양새다. 스크린을 뚫고 나온 캐릭터인 듯 보이지만 저들은 연기를 한다기보다 배우 자신으로 존재한다. 영화와 연극이 동시 진행되는 2중 구조와, 배우 각자가 분단 현실에 관한 개인적 기억을 더해 가며?작품 속 캐릭터와 합체하는 또 다른 2겹의 층이 씨줄과 날줄로 얽혀있는, 이제껏 본 적 없는 희귀한 형식의 무대다.?국립극단과 프랑스 오를레앙 국립연극센터가 한불 상호교류의 해를 기념해 공동제작한 작품.


지난해 국내에서 연극과 영화, 꿈과 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환상적인 미장센으로 화제를 모은 연극 ‘스플렌디즈’의 아르튀르 노지시엘(50)이 연출을 맡아 프랑스 극작가 발레리 므레장과 함께 각색했다. 한국의 서사가 프랑스 예술가들의 손을 거쳐 입체적으로 거듭난 무대는 프랑스 공연(오를레앙 국립연극센터 5월 17~21일)을 시작으로 세계 무대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독특한 이종교배 실험의 이면이 궁금해 노지시엘 연출과 주연배우 지현준(38)을 만났다.


“‘시엘 형’은 아직 안 왔나요?”


지현준과 노지시엘 사이엔 배우와 연출 간의 거리나 긴장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배우 출신이라는 노지시엘은 장난기가 넘쳤다. 촬영 때도 깜찍한 제스처로 웃음을 유도하며 자연스런 그림을 만들어내는 타고난 광대였다. 작업 과정에서도 다함께 도시락을 나눠 먹으며 문화 차이를 느끼지 못할 만큼 격의없이 지냈다고 했다.


“인간에 대해 묻는 작품이라 파고들어갈수록 차이를 못 느꼈어요. 굳이 따지자면 독백체나 대화체의 화법이 다 똑같은 불어에 비해 한국어의 미묘한 어감을 이해할까 걱정이었는데 결국 다 이해하고 잘 이용해서 만들더군요. 오히려 그 차이점 때문에 서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구요.”(지현준, 이하 ‘지’)


“지금은 같은 세계에 속한 사람들인 것 같아요. 한국어의 특징을 알아야 연출을 이끌 수 있으니 거기 시간을 들이긴 했죠. 어떤 문화권에서 어떤 언어가 만들어지느냐를 발견하는 일이 복잡하긴 해도 작업을 흥미롭게 만들어줬어요. 사람들 사이의 관계나 세계와의 관계까지 밝혀주는 것 같았죠.”(노지시엘, 이하 ‘시엘’)


평소 한국 영화를 즐겨봤다는 노지시엘은 ‘빛의 제국’ 공동제작이 결정되자 문소리를 먼저 여주인공으로 낙점했다. 재작년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된 ‘길 떠나는 가족’을 보고나서는 지현준을 찜했다. 하지만 무대에서보다 공연 뒤 길에서 만났을 때 ‘꼭 같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지현준도 노지시엘의 ‘스플렌디즈’를 봤지만 영화와 드라마 출연까지 포기하고 ‘빛의 제국’을 택한 건 그에게서 느낀 인간적인 확신 때문이었다.


“프랑스를 많이 좋아한다며 꼭 같이 가고 싶다더군요.(웃음) 몇 초 만에 느낌이 왔어요. 깊이와 감동, 인간적인 연대를 느꼈죠. 내가 찾는 배우는 나에게 주는 울림이 있어요. 마치 내 세계의 일부인 듯 알아보는 순간이 있죠. 방금 만났지만 옛날부터 알고 있던 느낌이랄까.”(시엘)


“‘스플렌디즈’를 보며 호기심은 있었지만 다른 스케줄 때문에 결정을 못 하고 있었어요. ‘빛의 제국’을 읽고 만나서 김기영을 어떻게 연기하면 되냐고 물으니 김기영은 지현준이라더군요. 그냥 당신이 하면 된다고. 그 당시 제게 굉장히 중요한 말이었어요.”(지)


결국 노지시엘과의 작업은 연기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연출의 일방적인 지시를 따르는 것이 아닌 ‘함께 만들어가는’ 연극의 본질까지 새삼 되새기게 됐다는 것이다. “외국인이긴 하지만 같은 눈에서 공유한다는 걸 느꼈어요. 내가 낮춰서 소통하는 게 아니라 딱 같이 함께 나눈다는 느낌이죠. 모든 걸 나누고 같이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연극은 함께 작업하는 사람들과의 신뢰가 전부란 걸 새삼 느꼈죠. 제가 연희단거리패 출신이잖아요. ‘그래, 연극이란 이런거지’라는 초심을 다졌달까요.”(지)

“두 개 스크린의 서울 풍경이 또다른 주인공” 작품의 또 다른 주인공은 두 개의 스크린에 비치는 서울 풍경이다. 노지시엘은 『빛의 제국』이 한국 사회에 관한 소설이기에 이 프로젝트를 위해 처음 한 일이 소설 속 장소들을 직접 방문하는 일이었다고 했다. “서울이란 도시는 그냥 배경이 아니라 그 자체가 캐릭터거든요. 작품에 실제 사람들의 기억, 추억을 담고 싶었어요.”


그가 만난 서울은 생명력 넘치는 매력적인 도시였지만 ‘모든 게 다 새 것이라’ 놀랍기도 했다. 건축물을 비롯해서 과거의 흔적을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전쟁을 거치며 그랬겠지만 서울의 과거는 아마도 땅 속에 묻혀있을 것 같아요. 파리에는 과거가 도처에 존재하죠. 예컨대 내가 사는 집도 17세기 건물이고 바로 집 앞의 다리는 14세기 지어진 것이에요. 그게 파리에선 일반적인 일이고 프랑스인들은 전혀 다른 시간층이 함께 존재하는데 익숙하죠. 그래서 과거가 파괴된 서울의 공간에 놀랄 수밖에 없었어요.”(시엘)


그래서 새것만 보이는 서울에서도 과거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굳이 보여주고 싶었단다. ‘분단현실이 개인의 의식과 무의식에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포커스 삼아 배우 개인의 사적인 기억까지 동원해 2007년이 배경인 소설 속 캐릭터와 2016년 현재를 사는 한국인들을 만나게 한 것이다.


“한국 역사에서 20세기는 매우 고통스런 일들이 일어난 시기였죠. 지금 세대는 거리감을 느끼고 부인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기실 아직도 그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어요. 역사적 사건들이 사람들의 세계관을 형성해내고 인간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죠. 소설에도 그런 분단 문제는 도처에 있어요. 결국 마리와 기영을 갈라놓은 건 역사로 시작된 거짓말이고, 그런 역사적 문제가 진정한 소통을 불가능하게 했죠. 저들은 서로 가깝고 연결돼 있다는 허상 속에 살고 있지만 그들 사이에도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비무장지대가 존재하고 있어요. 그런 면들을 밝혀 주고 싶어요. 서로 연결돼 있다는 허상을 밝혀주고, 거짓말이 어떻게 우리 삶을 파괴하는지, 우리가 역사의 부산물이라는 것까지 보여주고 싶어요. 미래를 제대로 보기 위해 과거를 다시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도 말하고 싶고요.”(시엘)

연극 ‘빛의 제국’ 중에서

“분단 문제는 도처에 있어 … 우리는 역사의 부산물” 이 무대가 특별한 건 배우가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 있다. 소설 속 캐릭터의 외연을 연기하는 것은 스크린 속 배우들이고, 무대 위 배우들은 관객에게 그 속마음을 들려주기 위해 스크린을 뚫고 나온 영혼들인 셈이다.


“캐릭터라는 건 너무 작아요. 보통 배우들은 캐릭터에 대해 가진 편견에 자기를 맞추려고 하죠. 내가 보여주고 싶은 건 인간의 깊이에요. 무대 위에서 배우가 하는 말은 최대한 진실되게 들렸으면 해요. 캐릭터보다 배우 자체가 훨씬 흥미로운 존재거든요. 우리 배우들을 캐스팅한 것도 캐릭터와의 유사성이나 배우로서 스킬이 아니라 그 사람의 소울과 존재감 때문이었죠. 배우에게 필요한 건 연기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진실을 증언하려는 태도라고 봐요.”(시엘)


지현준은 무대 위에서 캐릭터와 일체가 되는 이 특별한 작업이 자신의 연기인생에서도 반드시 해결해야 할 숙제였다고 했다. “전작인 ‘시련’ 때도 당신이랑 비슷하니까 당신처럼 연기하라고 하더라고요. 아, 내가 어떻게 생겼지? 도무지 모르겠더군요. 그런데 이 작품은 스스로 김기영인지 지현준인지 헷갈리는 지점에서 굉장히 진실된 게 나와요. 그 순간 연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아니라 극장에 모인 사람들을 위해서 진짜 얘기를 한다는 느낌? 그렇게 되니니 텍스트에 생명이 붙는 거 같아요. 늘 꿈꿔 온 ‘보이지 않는 배우’에 역으로 가까워진 느낌도 들고요.”(지)


노지시엘은 소설의 제목이자 커버 그림으로 이용된 르네 마그리트의 회화 ‘빛의 제국’이 밤의 어둠과 낮의 빛이 공존하는 역설적인 상황을 보여주는 것처럼, 자신의 무대도 빛이 어떻게 어둠을 밝혀주며 어둠이 밝은 것을 보게 하는지를 드러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림을 보면 내가 빛과 어둠 중 어느 세계에 속해 있는지 알 수 없죠. 우리 작품도 그래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짜인지 허상인지, 현실인지 꿈인지, 연극인지 영화인지 모르죠. 분명한 건 다른 두 세계 사이에 아주 얇은 경계가 있다는 것이에요. 어쩌면 우리 세계의 반대편을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르죠.”(시엘)


감옥에 갇힌 죄수들의 삶을 화려한 갱스터 영화처럼 전복시켜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무너뜨렸던 전작 ‘스플렌디즈’처럼 혼란스럽지는 않다. 하지만 스크린과 무대의 동시 진행, 소통의 단절을 웅변하듯 상당 부분 독백으로 끌고 가는 전개가 원작소설의 깊이나 복선과 반전의 묘미와는 무관해 보인다. 책을 읽지 않았다면 스토리를 따라가기 힘들 수도 있겠다고 하니 노지시엘은 “책을 보여주려는 게 아니”라고 단호히 선을 그었다.


“극장에서 경험할 것은 소설에서 알고 있는 지식이나 지성과는 별개예요. 인간에 대한 이해와 관련이 있죠. 연극이란 우리 안의 깊은 감정과 다시 엮어주는 기능을 합니다. 기억을 되살리고 죽은 자를 다시 불러오기 위한 의식에 가깝죠.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 모여 두 시간 동안 다른 이들이 만들어 내는 허상을 경험하는 것은 매우 특별한 일이에요. 그 순간에 탄생되는 비밀스런 느낌을 공유하기 위해 순수한 마음만 갖고 오면 됩니다.”(시엘)


“제가 ‘단테의 신곡’을 했었잖아요. ‘스플렌디즈’가 지옥편이었다면 이번엔 연옥편이랄까요.(웃음) 지옥도 천국도 아닌, 어디에도 속하지 않아 더 괴로운 우리 이야기 같아요.”(지) ●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국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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