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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代물림 하는 가난] 어느 할머니의 가족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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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가족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하자 윤영애(77.서울 신내동)할머니는 "남사스럽게 우리 집 이야기를 어떻게 하느냐"고 손사래부터 쳤다. 8명의 자식 중 이미 3명을 앞세웠다는 尹씨는 "팔자도 사납다"고 했다.

"남편이 남의 땅 소작하고 염전 일을 해서 보리밥은 먹고 살았제. 남편이 위암으로 세상을 뜨고 살기가 힘들어 1970년 상경했다"고 말했다. 남편이 남긴 재산이 별로 없어 거의 맨손으로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서울 창신동에서 오전 9시에 출근해 다음날 오전 2시까지 미싱 보조와 실밥 뽑는 일을 하면서 나머지 다섯 명의 자식 입에 겨우 풀칠을 할 수 있었다.

"자식을 너무 많이 낳아 제대로 먹이지도 가르치지도 못했어. 부모 잘못 만나 다 고생하고 있제. 그래서 맘이 아프제."

尹씨 슬하에서 평탄하게 사는 자식이 없다. 그들에게 부모 부양 능력이 없어 尹씨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됐다. 86년 큰아들이 세상을 떠나고 둘째아들도 10여년 전 지병으로 숨졌다. 셋째아들(41)은 96년부터 尹씨와 영구임대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지체 장애인이다. 결혼은 꿈도 꾸지 못했다.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간경화를 앓고 있다.

큰딸(59)도 하반신이 마비된 장애인이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정부에서 나오는 생계비로 생활하고 있다. 오래전 소식이 끊긴 셋째딸(46)과 막내아들(39)은 尹씨에게는 늘 아픔이다.

셋째딸은 울산으로 시집갔지만 아이를 낳지 못해 시집에서 쫓겨났다. 주민등록마저 말소됐다. 중학교를 중퇴한 막내아들도 일정한 직업 없이 여기저기를 떠돌고 있다고 했다.

며느리가 손자 두 명을 데리고 가출했다. 첫째와 둘째 아들네와는 두 아들 사망 후 연락이 끊겼다. 서울 수서동과 월계동의 영구임대아파트에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尹씨의 고향은 황해도 송해군의 어촌. 아버지는 고기 잡는 선주의 사무를 봤지만 매우 가난한 편이었다. 이렇게 尹씨는 3대째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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