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 세탁’ 북한 선박까지 단속, 안보리 제재보다 더 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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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16일 국회 연설에서 개성공단 전면 중단 조치를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8일 발표한 독자 제재안은 그 연장선이다. 큰 방향은 ▶5·24 조치를 강화하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2270호를 보완하고 ▶미국·일본 등의 독자 제재 조치와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이다. 정부는 제재 조치와 별도로 기대 효과를 적은 자료에서 “북한을 변화시키기 위한 국제사회의 공조를 선도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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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북한산 원산지 확인=정부는 북한산 물품의 반출·입을 엄격하게 통제하기로 했다. 2010년의 5·24 조치에선 ‘남북 간 교역을 위한 모든 물품의 반출·반입 금지’를 명시했지만 제3국을 통한 우회적인 위장 반입이 있어왔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실제로 5·24 조치 이후 지난해 10월까지 북한산 물품의 원산지를 바꿔 국내로 들여오려다 적발된 경우가 71건이었다. 정부는 원산지 확인과 국내시장 단속을 강화할 계획이다.

유엔, 금지화물 의심 때 입항 금지
우린 북 들르기만 해도 못 들어와
“북한 의심물자 해상수송 힘들 것”

해외에 있는 북한 식당 이용을 자제하라고 명문화한 것도 5·24 조치에서 규정한 ‘북한 주민과의 접촉 제한’을 강화하는 조치다. 외교부 당국자는 “해외 식당 이용자 대부분이 한국인”이라며 “이렇게 낸 돈이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 개발 자금으로 쓰인다는 것을 강조해 주의를 환기시키려 한다”고 설명했다. 이 당국자는 “3·8 조치가 5·24 조치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말했다.

② 강력한 해운 제재=북한에 머물렀던 선박의 입항을 180일 동안 금지한 것은 안보리 결의 2270호보다도 강력한 조치라고 정부는 강조했다. 2270호는 금지된 화물을 싣고 있다고 믿을 만한 ‘합리적인 근거가 있을 경우’에만 입항을 금지하고 있다. 지난해에만 외국 선박 66척이 북한을 들렀다 국내에 104회 입항했다.

일본도 지난달 같은 내용의 독자 제재 조치를 발표했다. 정부 당국자는 “한국과 일본이 동시에 나섰으니 외국 선박이 앞으로 북한 기항을 꺼릴 것이다. 결과적으로 북한이 의심 가는 물자를 해상으로 수송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북한과 러시아 3국 간 물류협력 사업인 나진-하산 프로젝트도 중단된다. 김홍균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북한 비핵화에 진전이 있으면 사업 재개를 재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러시아 측에는 7일 외교채널을 통해 관련 내용을 설명했다고 한다.

제3국 국적이지만 실질적으론 북한 소유인 편의치적(便宜置籍) 선박도 입항이 금지된다. 선박 ‘국적 세탁’은 북한이 국제사회의 제재를 피하기 위해 자주 써온 수법이다. 안보리 결의 2270호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는 북한 선박 31척 중 최소 10척은 서류상 제3국 소속이다. 정부는 편의치적 선박 규제를 위해 수년간 독자적으로 축적해온 정보도 활용할 계획이다. 북한 선박의 한국 해역 운항은 5·24 조치로 이미 금지돼 있다.

③ 국제사회에 모범답안 제시=이석준 국무조정실장은 이날 정부 제재안을 발표하며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개발 특성을 감안해 실효적인 수출통제 기준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북한에 특화된 감시대상품목 목록(watch-list)을 작성해 국제사회에 알릴 계획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우리는 북한이 무기 개발에 전용할 수 있는 품목에 대해 정보가 많다. 예를 들어 미사일 발사 후 잔해를 수거해 부품 등을 분석하는 것도 우리만 갖고 있는 정보”라며 “우리가 먼저 선도적으로 리스트를 만들면 다른 나라가 참고서처럼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거래 및 재산거래가 금지되는 제재 대상도 가장 많다. 이달 초 기준으로 각국이 지정한 북한의 제재 대상은 미국이 단체 29개, 개인 38명, 유럽연합(EU)은 단체 16개, 개인 21명, 일본은 단체 20개, 개인 17명이다. 한국은 이번에 단체 30개, 개인 40명을 추가해 총 단체 34개, 개인 43명이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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