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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詩)가 있는 아침 ] - '나의 시가 되고 싶지 않은 나의 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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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최승자(1952~ ) '나의 시가 되고 싶지 않은 나의 시' 전문

움직이고 싶어
큰 걸음으로 걷고 싶어
뛰고 싶어
날고 싶어

깨고 싶어
부수고 싶어
울부짖고 싶어
비명을 지르며 까무러치고 싶어
까무러쳤다 십 년 후에 깨어나고 싶어



이런 절규가 시가 되는 결정적 이유는 제목에 있다. '나의 시가 되고 싶지 않은 나의 시'…. 시를 던져버리고 시를 포기한 자리에서 홀연히 싱싱한 꽃이 피었다. 아울러 끝 구절 '까무러쳤다 십 년 후에 깨어나고 싶어'를 보라. 이땅의 남성 시인들이 결코 쓸 수 없는 시다. 그들은 이미 움직이고 있고 큰 걸음으로 걷고 있으니까…. 뛰고 날고 깨고 부수고 있으니까.'그리하여 어느날 사랑이여. 내 몸을 분질러다오. 내 팔과 다리를 꺾어 네 꽃병에 꽂아다오' 그녀의 시는 들끓는다. 시를 공예품처럼 다듬고 있는 장인들은 많지만 시 덩어리로 태어난 시인은 흔하지 않다. 문득 그녀들이 보고 싶다.

문정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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