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률 늘면 덜 행복 상대적 박탈감 탓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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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9호 29면

누구나 공정사회를 원한다. 그러나 사람마다 공정에 대한 기준은 다르다. 이는 최후통첩 게임에서 잘 나타난다. 게임의 룰은 간단하다. 제안자(A)는 10만원을 게임 상대자(B)와 얼마에 나눌지를 제안한다. B가 제안을 수용하면 A가 정한 비율대로 나누어 갖지만, 거부하면 A와 B 모두 한 푼도 가져갈 수 없다. 분배 비율을 정하는 A가 유리해 보이지만 B 역시 거부권을 통해 A를 견제할 수 있다.


최후통첩 게임과 관련된 연구들을 종합하면, A가 B에게 제안하는 평균 분배 비율은 약 45%인 반면, B의 평균 거절 비율은 약 20%였다. A의 제안 비율이 30% 이하일 경우 B의 절반 정도가 거절하였다. 무작위로 선정된 실험 참가자들이 A와 B 중 어떤 역할을 맡느냐에 따라 공정함에 대한 기준이 달라진 것이다. 특히 A가 얼마를 제안하든지 간에 B가 불공정하다 느끼면, 자신의 이익까지 포기하면서 상대의 이익을 제한하였다. 하지만 우리의 뇌는 불공정한 상대가 없어도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면 스스로 손실 상황을 선택하기도 한다. 성과급에 대한 두 가지 상황을 보자.


A. 나는 100만 원, 동료는 50만 원B. 나는 200만 원, 동료는 400만 원


A 상황은 내 성과급이 동료보다 두 배 높다. B 상황은 내 성과급이 A 상황보다 두 배 높지만, 동료의 절반에 그친다. 이와 유사한 실험을 하버드 의과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결과, 참가자의 50% 정도가 A 상황을 선호하였다. 자신보다 두 배나 높은 보상을 받는 동료를 보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 보다, 차라리 반 토막 나는 성과급을 선택하였다.


최후통첩 게임과 달리 성과급 실험에서는 불공정한 상대나 부당한 제안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험 참가자의 절반 정도가 상대적 박탈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발적 손실을 선택하였다. 이처럼 우리의 뇌는 불공정보다 불공평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 문제는 상대적 박탈감이 타인과의 비교만으로 쉽게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객관적으로 모두가 잘 살게 되어도 소득격차가 커지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함께 늘어난다. 2014년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GNI)은 과거 60년 전보다 420배나 뛰었다. 하지만 2013년 자신이 하층민이라고 느끼는 비율은 약 47%로 응답자의 절반에 이른다. 과거보다 내가 백 배 이상 잘 살게 되어도 나보다 천 배, 만 배 이상 잘 사는 사람을 보면, 우리의 뇌는 자신이 가난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 같은 기관이 있는 것처럼 불공정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사회적 감시와 견제가 가능하다. 하지만 금수저·흙수저 논란에서 알 수 있듯이, 불공평은 그저 자신의 운을 탓하는 것 외에 뾰족한 대안을 찾기 어렵다. 이로 인해 상대적 박탈감은 소리 없이 광범위하게 방치되기 쉽다.


하지만 상대적 박탈감을 계속 방치하면 경제가 성장할수록 국민들의 평균적인 행복지수는 더 낮아지는 ‘성장 패러독스’에 봉착하기 쉽다. 우리나라는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세계 13위임에도 불구하고, 최근 유엔이 발간한 ‘세계행복보고서’에 의하면 행복순위는 47위였다. 소득이 올라도 상대적 박탈감이 해소되지 않으면 행복감정으로 연결되기 어렵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는 인터넷도 스마트폰도 없다. 지금보다 휠씬 불편해도 당시에는 자신이 하층민이라고 느끼는 비율은 약 37%로 지금보다 낮았다. 상대적 박탈감을 개인의 운으로 방치하는 성장은 누군가에겐 고통이다.


최승호


도모브로더 부대표 james@brodeu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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