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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5000만원 올려 달라는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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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환 기자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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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환
경제부문 기자

대한항공 사측과 조종사 노조의 임금협상이 최종 결렬된 직후인 지난 1월 21일. 노조는 인터넷 홈페이지에 이런 해명 글을 올렸다.

 “우리 조종사들이 동요하지 않고 오직 안전한 비행에만 전념할 수 있는 (수준의) 임금 인상률을 제시했습니다.”

 노조가 제시한 임금 인상률은 37%. 조종사 평균 연봉은 1억4000만원에 달한다. 인상률을 적용하면 5180만원을 올려달라는 주장이다.

 높은 인상률은 물론 글 내용도 심상치 않다. ‘우리가 요구한 수준의 급여를 올려주지 않는다면 안전한 비행에 전념할 수 없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래서야 안심하고 비행기 탈 수 있겠나.

 노조는 지난달 20일 정시 출근, 8시간 근무시간 준수 등을 내용으로 하는 준법 투쟁에 돌입했다. ‘파업 카드’도 만지작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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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노조가 웬만한 월급쟁이 연봉을 넘는 액수를 한 번에 올려달라고 요구하는 건 ‘몸값’이 올랐기 때문이다. 중국 항공사는 한국 조종사들에게 3억~4억원대 연봉을 제시하며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지난해 대한항공에서만 46명이 자리를 옮겼다. 미국 조종사 평균 연봉(1억6300만원), 일본 조종사 평균 연봉(1억7600만원)도 한국 수준을 웃돈다.

 노조 관계자는 “10여 년간 지지부진한 조종사 임금 인상률과 국외 항공사 임금 수준을 고려했을 때 우리가 제시한 인상률이 적정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선뜻 공감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조종사 노조는 높은 연봉과 탄탄한 복지 덕분에 현대차 생산직 노조와 함께 대표적인 ‘귀족 노조’로 꼽힌다.

 회사 상황도 녹록지 않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국내선 점유율 절반 이상을 저비용항공사(LCC)에 내줬다. 이달 중 연간 40억원의 적자를 내는 김포~광주 노선을 폐쇄할 예정이다. 중국·중동 항공사들은 국제선을 야금야금 빼앗고 있다. 이를 감안한 대한항공 일반직 노조는 임금 1.9% 인상에 합의했다. 수출 대기업 상당수가 경영에 ‘빨간불’이 켜진 상황에서 조종사 노조의 요구가 ‘이기주의’로 비치는 이유다.

 노조 요구는 불황에 시달리는 삼성중공업의 노조 격인 노동자협의회의 행보와 대비된다. 삼성중공업 노동자협의회 간부들은 3일부터 경남 거제조선소에서 대형 선주(船主)사 사무실을 돌며 직접 수주에 뛰어들었다. 회사 경영진이 아닌 노조가 수주에 나선 건 처음이다.

 변성준 노동자협의회 위원장은 “기업 회생에 대한 직원의 진정성을 알리기 위해 직접 나섰다”고 설명했다.

 ‘임금 37% 인상’을 외치는 조종사들은 기내 조종석 뒤 승객의 눈길이 따갑지 않을까.

김기환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