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장난 아닌 장난감 사기…“고가 피규어 싸게 줄게” 17억 챙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기사 이미지

범블비·배트맨·아이언맨(왼쪽부터). 수십·수백만원인 다양한 가격대의 피규어가 있다. [사진 피규어몰] ※피규어몰은 아래 사건과는 관련이 없는 업체입니다.

피규어 수집이 취미인 직장인 A씨(35)는 지난해 5월 영화 ‘트랜스포머’의 캐릭터 피규어를 인터넷 사이트 ‘피규어킹’에서 주문했다. ‘정가 160만원짜리를 30% 이상 저렴한 가격인 90만원에 판다’는 홍보 문구에 마음이 동해서였다.

키덜트족 울리는 범죄 기승

그는 같은 해 5~6월 이 사이트에서 10개의 피규어를 예약 주문했다. A씨가 이 사이트에 입금한 현금만 400만원에 달한다. A씨는 “워낙 고가의 피규어라 불안하기도 했지만 매니어들 사이에서 잘 알려진 사이트라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운영자 김모(46)씨는 두 달이 지나도 피규어를 배송해 주지 않았다. 대신 그는 “제품이 쇼트(본사에서 수량을 적게 만들어 입고가 안 되는 것)가 났다”거나 “업체에서 제작이 늦어진다” 등의 핑계를 대며 A씨를 안심시켰다. 결국 환불도 받지 못하고 제품도 받지 못한 A씨는 사이트 운영자를 지난해 7월 경찰에 고소했다.

 25일 서울 도봉경찰서는 1655명으로부터 17억4000만원을 가로챈 혐의(사기)로 사이트 운영자 김씨를 구속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또 김씨의 사기 행각을 알고도 통장 등을 빌려 줘 범행에 도움을 준 혐의(사기 방조)로 김씨의 아버지(74)도 불구속 입건했다.

사기 전과 2범인 김씨는 배트맨·아이언맨 같은 신상품 피규어를 6개월에서 2년 사이에 특가예약으로 배송받을 수 있다고 피해자들을 속여 현금으로만 입금받아 돈을 가로챘다. 그는 이렇게 가로챈 돈으로 외제차를 타고 클럽에 다녔다고 한다. 경찰 조사 결과 5800만원까지 피해를 본 피해자도 있었다.

 A씨 같은 ‘키덜트(Kid+Adult)’족이 늘어나면서 이들을 노린 범죄도 덩달아 기승을 부리고 있다. 키덜트는 성인이 돼서도 동심을 잃지 않고 어린 시절 즐겼던 장난감이나 만화를 다시 찾는 사람들을 말한다. 국내에서는 30~40대가 주류다.

실제로 지난해 8월 경기도 고양경찰서는 인터넷 중고 사이트에서 피규어를 싸게 판다고 속여 3개월간 67명에게 505만원을 가로챈 혐의로 채모(23)씨를 구속했다.

 서울시 전자상거래센터에 따르면 최근 3년 사이 키덜트 상품을 대상으로 한 업체 연락 두절이나 사기, 배송·환불 지연 같은 피해사례도 136건(2013년), 149건(2014년), 327건(2015년)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특히 A씨가 피해를 본 피규어 제품은 싸게는 몇 만원부터 수십·수백만원에 이르는 다양한 가격군을 형성하고 있다.

희소성이 있는 제품의 경우 중고 거래도 활발해 사기당할 확률도 더 크다. 유병수 피규어뮤지엄W 대표는 “피규어는 인터넷 카페나 이베이 같은 경매 사이트 등에서 매매되는데 희소성이 있는 중고 물품은 2~3배 프리미엄이 붙어 팔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 피규어 판매업체 관계자는 “현금을 주면 싸게 해 주겠다는 곳은 의심부터 해야 한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이처럼 키덜트족을 노린 범죄가 늘어나는 이유는 피규어·프라모델·RC카 등이 고가인 데다 키덜트 시장 자체도 급성장하고 있어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키덜트 시장은 지난해 5000억원 규모였다. 올해도 10~20% 커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관련 기사'아이돌 공연 티켓 팝니다'…140명 속인 20대 적발



인터넷쇼핑몰 11번가 나혜영 자동차·취미팀 MD(상품기획자)는 “키덜트 상품의 연간 거래 증감률을 살펴봐도 키덜트 시장은 2년 전부터는 해마다 30% 이상씩 늘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2020년께에는 키덜트 시장 규모가 1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보고 있다.

강경석 한국콘텐츠진흥원 산업분석팀장은 “인터넷 사이트는 물론 대형마트 등에 키덜트 전문관이 생기는 등 온·오프라인 시장이 모두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는 “키덜트 범죄자들은 주문을 해도 제작·배송까지 장기간이 걸리는 피규어 판매방식과 한정판을 얻고자 하는 소비자들의 욕구·조바심을 교묘하게 범죄에 이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조한대 기자 cho.handa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