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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탐험(5)] 김정은과 중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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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제1위원장과 류윈산 중국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 당창건 70주년 열병식을 관람하고 있다. [노동신문]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공식적으로 중국을 방문한 적이 없다. 후계자가 된 2009년 이전에 중국에 놀러 간 적이 있는 지 알 수 없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08년 6월 국가 부주석으로 평양을 방문했을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는 자리에 김정은이 배석했는지도 현재 확인하기 어렵다.

김정일은 김정은에게 ‘중국을 믿지 말라’고 당부했다. 중국과의 관계를 끊을 수 없기 때문에 ‘마음을 주지 말고 활용해라’는 의미다. 김정일은 젊은 시절에 중국의 배신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1972년 닉슨의 방중과 1992년 한·중 수교를 지켜보면서 중국이 언제든지 자신들의 국익에 따라 북한을 버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김정일이 어린 김정은에게 외교관계를 가르치면서 중국을 가장 많이 할애했다고 한다. 특히 중국이 건국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제2차 국·공 내전 시기에 북한이 중국을 도와준 점이다. 중국 공산당이 국민당에 쫓겨 동북 3성으로 몰렸을 때 북한이 일본 군대가 철수하면서 남겨 둔 무기를 공산당에 제공했다. 북한이 중국에 큰 소리를 치는 가장 큰 이유다. 중국 공산당 원로들도 그 점에 대해서는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김일성·김정일은 이런 점을 잘 활용했다.

때문에 중국은 김일성·김정일이 방중할 때 정치국 상무위원 전원이 그들을 만나주었다. 다른 어떤 국가의 최고지도자들이 가더라도 이런 경우는 없었다. 김정일은 이 점을 김정은에게 심어준 것이다. 그래서 중국에게 마음을 주지 말고 활용해라고 충고한 것이다.

중국 5천년 역사의 넓이·깊이·높이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그나마 북한이 어느 나라 보다 중국을 아는 것 같다. 1,400km 국경을 맞대고 있을 뿐더러 그 동안 많은 전쟁을 통해 서로를 잘 알기 때문이다. 특히 6.25 전쟁이 끝난 뒤 1958년 철수할 때까지 중국 인민해방군이 북한에 주둔하면서 북한 여성들과 결혼을 많이 했다. 그 가운데 중국 인민해방군의 장성이 된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 장성 부인들이 북·중 간의 가교 역할을 해 왔고 지금도 양국 군부간의 인적 교류에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 외교 문제로 양국 교류가 중단돼도 군인들의 교류는 지속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근 북한의 제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국제 사회가 중국에 대북 제재를 강화할 것을 요구하지만 중국은 시늉만 내고 있다. 김정은은 중국이 북한을 싫어하는 줄 알지만 이번 일이 중국의 핵심이익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반도가 긴장되면 중국이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지만 북한을 포기할 정도는 아닌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김정은이 중국의 이런 속내를 잘 활용하고 있는 것 같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지난 17일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 실현과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을 병행 추진하는 협상 방식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왕 부장은 이날 베이징에서 줄리 비숍 호주 외무장관과 양자 회담을 마친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 같이 말했다. 평화협정 체결은 그동안 북한이 주장해온 이슈다. 중국의 난데없는 제안이지만 중국의 전략이자 계산이다. 개성공단을 중단하면서 중국의 대북 제재 동참을 이끌어 내려던 한국이 참 이해하기 어려운 시추에이션이다.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ko.soos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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