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과 나침반] 간접광고, 그 달콤한 유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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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빈이 사약을 받는 장면 하단에 느닷없이 '장소협조 한국민속촌'이라는 자막이 뜬다면? 떴다가 금세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다섯 번 정도 읽을 시간 내내 멈추어 서 있다면? 수돗물을 잠그고 조선시대에 깊숙이 들어와 있던 시청자에게 일종의 소격 효과를 주려는 의도인가? 이건 드라마일 뿐이니 너무 빠지지 말고 정신 차리라는 제작진의 우정어린 '찬물 끼얹기'인가? 아니다. 한국민속촌이 요구하는 만큼 장소 사용료를 떳떳하게 지급했다면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지난주 일요일 아침에 첫 방송된 '서바이벌 정글특급'은 1990년대 초 방송된 '열전 달리는 일요일'의 21세기형 버전이다. 이 프로그램을 위해 새로 엄청난 규모의 오픈 세트를 준비했다고 해서 화제가 됐다.

이번에야말로 제작진이 프로그램을 위해 제대로 투자를 하는가 싶었는데 프로 끝자락에 '장소협조 OO랜드'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나왔다. 시청료나 직접 광고료만으로는 도저히 그런 규모의 오픈 세트와 땅값을 감내하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예전에 방송된 일요아침드라마 '짝'은 주인공이 스튜어디스였다. 자연히 그녀가 근무하는 항공사가 배경으로 비칠 수밖에 없었다. 좀 수정하긴 했지만 복장과 로고가 그 항공사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했다.

마지막에 자막으로 그 항공사의 이름도 물론 나왔다. 장나라를 스타로 만든 드라마 '명랑소녀 성공기'는 화장품 회사를 둘러싼 이야긴데 역시 끝에 어김없이 어느 한방화장품 회사 이름이 나왔다.

그 회사가 만드는 제품의 이미지를 좋게 만든다는 오해가 생길 여지가 충분했다. 얼마 전에 마친 '술의 나라'는 제목 그대로 술 제조를 둘러싼 이야긴데 역시 배경은 특정 양조회사를 연상케 했고 끝에는 이름난 전통주 회사 이름이 매회 나왔다.

오락프로에 연예인이 상표가 부착된 옷을 입고 나오면 애써 상품명과 로고를 지운다. 보일 듯 말 듯하기 때문에 오히려 감질나게 만드는 효과를 업자들은 기대할지도 모른다. 입지 말라고 해도 출연자들은 막무가내다. 무언가 받았기 때문에 약속을 지켜야 했을 것이다. 제작진이 지우건 말건 나는 내 의무를 다했다고 연예인과 기획사는 광고주에게 말할 것이다.

외주 제작이 활성화하면서 간접광고의 스케일이 더 커지고 있다. 드라마에 출연자가 신형 자동차를 타고 나오는 경우는 어떻게 막을 것인가? 자동차 자체를 전부 모자이크 처리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드라마의 흐름상 꼭 필요하지 않은데 그 물품이 자주 등장한다면 한번 의심해 볼 일이다.

스케일이 큰 간접광고의 목록들을 보면 은연중 가고 싶고, 타고 싶고, 바르고 싶고, 마시고 싶지 않겠는가? 차라리 지하철 타기나 우유 마시기를 드라마에서 간접광고하면 어떨까 싶다.

프로그램 전개상 꼭 필요하면 자체 제작비로 충당하라. 직접 광고비를 받아 만들면 경쟁업체들의 불만도 사라질 것이다. 착한 이웃들을 도와주려던 취지의 '신동엽의 신장개업'에 대해서도 붙어있는 동종 업체들에선 불만이 엄청 많았다고 한다.

당연한 일 아닌가. 누구에게 이익을 준 만큼 누구에게 손해가 난다면 공영성은 요원하다. 의상은 철저하게 단속하면서 장소는 눈감아주는 건 깃털만 건드리고 몸통은 봐주는 경우와 흡사하다. 방송위원회는 원칙을 확실히 정하고 제대로 규율을 집행하라.

주철환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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