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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방·동결 강경책 뒤엔 김영철…8년 전에도 철수 협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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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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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가운데 앞)이 2014년 6월 군이 직접 만든 놀이시설인 급강하 물미끄럼대(워터슬라이드) 생산 공장을 찾았다. 최측근인 최용해 당 비서(왼쪽에서 둘째)와 김영철(점선 안)·최태복 당 비서,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김정은 오른쪽부터) 등도 자리를 함께했다. [사진 노동신문]

개성공단을 군사통제구역으로 선포한 북한의 강경 대응 뒤엔 김영철이 있다.

“남측 인원 추방” 발표한 조평통
김영철이 맡은 통전부 산하 기구
개성공단 폐쇄 후 ‘당 비서’ 호명
김, 2008년 군조사단과 개성 방문
“명함 돌리러 온 것 아니다” 발언도

지난해 12월 김양건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이 사망한 뒤 통일전선부장을 이어받은 것으로 당국이 보고 있는 인물로 군 정찰총국장 시절 천안함 폭침 등 굵직한 도발을 주도한 것으로 당국이 지목한 ‘대남 도발의 대명사’ 격이다.

북한은 11일 개성공단에 대한 군사통제구역 선포 외에 40분의 말미를 주고 남측 인원 전원 추방을 요구하거나 군통신·판문점연락통로 폐쇄 등을 선언하는 등 도발적으로 남측에 대응했다.

이런 조치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명의의 성명을 통해 나왔다. 조평통은 김영철이 맡은 통일전선부(통전부) 산하 기구다. 김영철이 개성공단에 대한 대응 역시 과거처럼 도발적으로 밀어붙인 것으로 보인다.

 김영철의 통전부가 성명에서 강조한 것은 “‘돈’보다 ‘자존심’이었다”고 복수의 정부 관계자들은 말했다. 북한은 개성공단 근로자의 1월 임금과 사실상 세금 성격의 토지사용료 등을 남측 기업으로부터 받아야 한다.

하지만 김남식 남측 개성공단관리위원장은 11일 밤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CIQ)를 통해 남측으로 귀환한 뒤 “임금 등 미수금에 대한 북한 측 언급이 있었느냐”는 기자들 질문에 “없었다”고 말했다.

개성공단 철수 과정에 관여했던 인사도 “임금 등 미수금에 대한 언급이 있을 가능성에도 대비하고 갔지만 북한은 언급을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조평통은 성명에서 “그따위 푼돈이 우리의 위력한 핵무기 개발과 위성 발사에 들어간 것처럼 떠드는 것은 초보적인 셈세기도 할 줄 모르는 황당무계한 궤변”이라고 남측을 비난했다.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10일 개성공단 전면 중단 방침을 밝히면서 개성공단이 “북한의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고도화에 악용된 결과가 됐다”고 한 것을 겨냥한 내용이었다.

정부 관계자는 “자기들이 성명에서 ‘푼돈’이라고 한 논리를 정당화하기 위해서라도 임금 등 미수금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김영철은 이미 개성공단과 악연이 있다. 2008년 11월 8일 김영철은 ‘국방위원회 정책실장’ 직함으로 개성공단에 군부조사단을 끌고 예고 없이 기습방문했다. 대북전단 살포 등으로 남북관계가 긴장 국면일 때였다.

그는 당시 남측 기업 관계자들에게 “철수하는 데 얼마나 걸리느냐”거나 “명함을 돌리러 이곳에 오지 않았다”는 협박성 발언을 했다.

 김영철의 방문 다음달 북한은 개성공단 남측 상주 인원 및 통행 인원을 대폭 축소하는 12·1 조치를 발표했다.

 개성공단의 문이 닫힌 뒤인 12일 김영철은 북한 매체에 의해 ‘당 비서’로 호명됐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라오스 인민민주주의공화국을 방문하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 김영철 동지를 단장으로 하는 조선노동당 대표단이 11일 평양을 출발하였다”고 보도했다.

그가 당 비서로 불린 건 처음이다. 당이 곧 국가인 북한에서 각 담당 부서의 사업을 총괄하는 당 비서는 최상위급 파워엘리트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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