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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 인사이드] 용산 화상경마장 건물 내 '키즈카페'도 OK?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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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용산 화상경마장 문제에 또 다시 법원이 답을 냈습니다.

용산 화상경마장 건물 내 '복합문화공간' 건축 불허가 처분을 취소한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부장 이승택)는 용산구청이 한국마사회에 내린 건축 불허가 처분을 판결로 취소했다고 12일 밝혔습니다. 한국마사회와 용산구 주민들이 2년 넘게 맞서 온 갈등에 법원이 또 한 번 매듭을 지은 것입니다.

갈등의 시작은 이랬습니다.

한국마사회는 용산역 서쪽 ‘마이웨딩홀’ 건물 2~6층에 있던 화상경마장(마권 장외발매소)을 건물을 새로 지어 이전하는 방안을 2009년부터 추진했습니다. 문제는 이 사실을 새 화상경마장이 들어서는 지역(용산 전자랜드 옆)의 주민들이 2013년 5월에야 알게 된 것이었습니다. 1200억원을 투입해 지은 지상18층 지하7층 규모의 건물은 이미 거의 다 지어진 상태였습니다.

주민들은 크게 반발했습니다. 화상경마장은 청소년 유해시설물인데 이 건물이 성심여고 교정에서 235m 밖에 안돼 교육환경에 악영향을 준다는 등의 이유였습니다. 주민들은 서명운동에 나서고 천막 농성도 벌였습니다. 주민들이 반발하자 용산구의회와 서울시의회는 화상경마장을 서울 외곽으로 이전하라고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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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한국마사회는 법적 대응에 나섰습니다. 서울서부지법에 영업장 방해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법원은 한 차례 화해권고 끝에 2014년 8월 이를 모두 받아들였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화상경마장은 2015년 1월 개장했지만 주민들은 계속 싸웠습니다.

잔불 상태로 남았던 갈등에 기름을 부은 건 바로 ‘키즈카페’. 한국마사회는 지난해 6월 새 화상경마장 건물 1~7층에 ‘복합문화공간’을 설치하겠다는 건축허가(대수선ㆍ용도변경 등) 신청서를 용산구청에 냈습니다. 이어 언론들이 복합문화공간의 주요 부분이 어린이들이 뛰어노는 ‘키즈카페’라고 알리면서 주민들의 반감은 커졌고 결국 용산구청은 같은 해 7월 불허 처분을 내렸습니다.

이유는

청소년휴해업소인 화상경마장을 주 용도로 사용하는 건물에 청소년 출입이 가능한 ‘가족형 놀이 여가시설’(‘키즈카페’등)을 설치하는 것은 부적합하다.”

그러자 한국마사회는 다시 법원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래서 벌어진 게 이번 소송입니다.

“중대한 공익상 필요가 없는 경우 관계 법령에서 정하는 사유 이외의 사유로 건축허가를 거부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에서 출발한 재판부의 판단은 “신청을 불허할 중대한 공익상 필요가 있다는 용산구청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로 끝났습니다.

재판부는 첫째 ‘복합문화공간’의 주요부분이 청소년과 어린이를 주 대상으로 하는 시설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봤습니다.

둘째로 만약 어린이ㆍ청소년을 위한 시설이더라도 화상경마장이 설치된 구역에 미성년자들의 출입을 제한해 피해를 방지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건축 불허가는 영업권을 필요 최소한으로 제한하는 적절한 방법이 아니라고 본 것입니다.

셋째는 현실론입니다. 교육환경에 악영향을 받는다면 그것은 이미 설치ㆍ운영되고 있는 화상경마장 때문이지 같은 건물에 ‘복합문화공간’이 들어서기 때문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봤습니다.

항소심에서 결론이 바뀔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한국마사회는 주민과의 갈등으로 인한 화상경마장 운영의 장애물을 모두 법적으로 걷어낸 셈이 됐습니다.

하지만 화상경마장 설치 운영 문제가 이렇게 법대로 처리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아쉬움은 남습니다. 실제로 한국마사회는 화상경마장을 포함한 문화시설을 각 지역에 설치하려는 과정에서 곳곳에서 주민반발에 부딪혀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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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서울 원효로 화상경마장 이전 예정 건물 앞에서 경마장 이전을 반대하는 촛불 문화제를 열었다.

2010년 6월 전남 순천시 풍덕동에 들어서려던 화상경마장은 주민과 시민단체의 반발로 입주 1달 전 무산됐습니다. 용산 화상경마장과 비슷한 시기에 민간 업자와 손잡고 충북 충주시에 조성하려던 ‘말문화복합레저센터’ 역시 비슷한 마찰로 표류했습니다. 소모적 갈등의 끝은 늘 지자체나 민간 업자들과 맞선 소송전이었습니다.

용산 화상경마장의 경우도 2009년 계획 수립과 입지선정 과정부터 지역 주민들과 충분한 협의를 거쳤더라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 보는 이유입니다.

임장혁 기자ㆍ변호사 im.janghy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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