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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형 화투·트럼프 제작사 ‘태전로얄’] 화투 뒷장에 회사 로고도 넣죠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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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에 집중하는 중에 카드에 찍힌 내용을 들여 다 보면서 새로운 대화 소재도 찾을 수 있다. 태전로열 직원이 설을 맞아 늘어난 화투 물량을 제작하느라 여념이 없다.

기발한 아이디어 담은 화투·트럼프 제작
제조사 전국 4곳 뿐

언제부턴가 자취를 감춘 장면이 있다. 예전엔 대다수 등산객이 산을 타고 내려오면 식당 평상에 배낭을 던져놓고 빙 둘러 앉았다. 장닭이 솥 안에서 익는 동안 누군가 국방색 모포를 펼쳐 판을 깔았다. ‘착착착’ 화투 섞는 소리가 나면 등반에 지쳤던 등산객의 눈빛이 달라졌다. 대여섯 판이 돌고 “쓰리고” 소리가 나면 그날 치를 백숙 값이 어느새 모였다.

요즘엔 이런 모습을 찾기 어렵다. 언제 어디서나 다들 스마트폰을 꺼내 든다. 식사를 하고 나면 각자 몫을 계산해 낸다. 길거리에서 한번쯤 볼 수 있던 ‘똥광’ 한 장 찾기 어렵다.

주문형 화투와 트럼프를 제작하는 태전로얄(로열트럼프) 이우길 대표는 “화투는 경기를 많이 타는 게임”이라며 “다들 주머니에 돈이 없으니 인심도 박해져서 놀이 삼아 화투 치자는 사람조차 없다”고 안타까워한다.

이 대표는 1990년부터 트럼프를 제작했다. 개업 5년이 지난 후 화투도 만들었다. 이제는 일반 화투나 트럼프 외에 판촉물 용도로 의뢰 받은 제품만 주문 제작한다. 이런 제품에는 기발하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듬뿍 담겨있다.

예컨대 외국 손님에게 한국 문화를 알려주기 위해 만든 트럼프가 있다. ‘K’ ‘Q’ ‘J’를 각각 ‘왕’ ‘여왕’ ‘장군’으로 바꿔놨다. 어떤 화투엔 한국 음식 이름이나 관광지를 그려놓고 ‘쌍피’로 쓴다. 이런 제품은 외국인이 많이 찾는 서울 인사동에서 인기리에 판매 중이다. 카드 게임을 하면서 재미있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효과가 있단다.

트럼프로 한국 문화 소개

화투의 진화도 눈부시다. 그림이 남다르고 개성이 넘친다. ‘솔광’부터 ‘비피’까지 심상치 않다. 만화 캐릭터를 응용해 만든 화투를 보자. 이렇게 귀엽게 그린 ‘비광’을 어떻게 모포 위에 남겨둘 수 있을까. 보너스용 ‘쌍피’도 다채롭다. 인터넷 ‘맞고’에서 본 화투룰 보다 획기적으로 판을 뒤흔들 수 있다. ‘패 바꾸기’는 물론 단번에 ‘피박’을 면할 수 있는 회생의 카드도 있다. 안과병원 광고가 들어있는 ‘쌍피’도 있다. 게임에 반전을 일으킨 화투에 대한 반가운 마음이 찍혀있는 광고에 우호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으니 광고효과도 남다르지 않을까.

화투처럼 만든 어린이 교육용 한자 카드도 있다. 인터넷 교육보다 학습효과가 훨씬 뛰어나다는 게 이 대표 설명이다. 어떤 거래처에선 회사 로고를 화투 뒤에 넣어달라고 주문한다. 화투를 치는 내도록 상대방에게 회사를 각인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디어를 담아 특별 제작한 화투는 시장 가격보다 10% 정도 더 받는다. 일반 화투는 한 세트에 1500~2000원인데, 좀 복잡한 그림과 아이디어를 넣어 3000원에 판매한다. 화투는 설이나 추석, 휴가철에 많이 팔린다. 평소보다 매출이 20%가량 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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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한 이미지를 담은 화투와 트럼프.

“화투는 오프라인 게임 플랫폼”

화투는 높은 인쇄 기술로 꼼꼼히 만들어야 한다. 플라스틱(PVC)에 특수 인쇄를 해야 한다. 온도나 습도 차이에 대단히 민감해 신경이 여간 쓰이는 작업이 아니다. 모두 수작업이다. 그래서 정상적으론 한 화투공장에 14명 이상이 투입돼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한 공장에 5~6명 정도만 일한다. 사장도 직접 소매를 걷어붙이고 일손을 거들어야 한다. 한 땐 화투를 만들던 공장이 전국에 50~60개 있었다. 하지만 현재 4곳에서 화투를 만든다. 과거에 비해 화투가 많이 팔리지 않기 때문이다. 한게임이나 피망 같은 온라인 게임이 성행하면서부터다.

화투 가격도 1960년대 이후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성인을 위한 놀이문화가 흔치 않았을 땐 화투의 가치가 높았다. 왜색·도박을 터부시하면서 ‘국민 게임’ 화투는 힘이 빠졌다. 아는 사람과 모여 모포 위에서 ‘딱’ 소리를 내는 손맛보다 온라인 공간의 익명과 화면 위에서 ‘딸깍’하는 클릭에 익숙해 지면서 화투는 설 자리를 잃었다. 이 대표는 “화투는 게임의 좋은 플랫폼이어서 아이디어에 따라 새로운 게임을 얼마든지 개발할 수 있다”며 “다들 온라인 게임 개발에만 몰두해서 그렇지 화투나 트럼프의 잠재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말한다. 그는 “좋은 게임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라면 꼭 로열트럼프로 연락을 달라”고 당부하며 사라져가는 오프라인 게임에 대한 추억을 달랬다.

박상주 기자 sang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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