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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유가보다 두려운 위안화 약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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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5호 18면

일러스트 강일구

올 들어 유가가 20달러대까지 떨어지고 원화가 약세를 보이지만 경제가 개선되는 조짐은 안 보인다. 날마다 이어지는 유가와 환율의 커다란 변동성은 자칫 피로감마저 느끼게 한다. 냉정하게 그 의미를 살펴보고, 놓치고 있는 리스크는 없는지 점검할 때다.


우선 명확히 해둘 것은 유가 하락에도 왜 국내외 경제가 개선되지 않느냐는 점이다. 세계경제 부진에 따른 수요 위축이 유가 하락의 중요한 원인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쉬운 답이다. 그러나 다른 조건이 불변인 상황에서 유가만 하락했을 때에도 긍정적인 효과가 없을 수 있다. 유가 하락은 산유국으로부터 원유 수입국으로 소득을 이전시켜 가계 구매력이 늘어나고 기업들의 생산 원가가 줄어든다. 이때 산유국의 수요감소 등 경기위축 효과보다 원유 수입국의 수요증가 등 경기확장 효과가 더 크다면 유가 하락은 세계 경제를 개선시키고, 반대일 경우에는 세계 경제를 위축시킨다. 금융시장이 발달해 자본이동이 매우 효율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이론적으로 유가가 실물경제에 미치는 효과는 없겠지만 현실은 다를 것이다.


 원화 환율 내렸지만 실제 가치는 상승80년대 중후반 저유가로 세계경제가 좋아진 것은 당시 중동과 구소련을 비롯한 산유국보다 유럽·미국·동아시아 등 원유 수입국 경제가 더 활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주요 원유 수입국 경제가 디플레 우려가 팽배할 정도로 위축돼 저유가가 별달리 수요를 자극하지 못하고 있다. 가계와 기업들의 부채 감축 압력 때문에 투자와 소비가 늘어나지 못한다는 대차대조표 불황설이 이를 뒷받침한다. 반면 그간의 높은 자원가격에 힘입어 경제 규모를 키워 온 사우디와 러시아·브라질 등 산유국 경제는 유가를 비롯한 자원가격 급락으로 재정이 파탄나는 등 치명타를 입고 있다.


유가 하락이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내수에 대한 직접효과와 세계 경제에 미치는 효과를 통한 간접효과의 합이다. 내수증가 효과는 분명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지난해 하반기의 소비 회복은 정책적 요인에 더해 저유가에 힘입은 바 컸다. 그러나 원유를 가공한 석유화학제품 수출 규모가 크게 늘어 유가 하락의 이득이 줄어든데다 우리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80년대 3저 호황 당시보다 훨씬 높아졌다. 저유가의 긍정적 효과가 과거에 비해 줄어들었을 가능성을 말해주는 부분이다.


환율 인하 경쟁에 뾰족한 대응책 없어환율 측면을 보자. 원-달러 환율은 지난해 연평균 1131원으로 2014년에 비해 7.4% 상승했고 이달 초에는 1200원을 넘기도 했다. 표면적으로는 원화 가치가 내린 것이다. 그러나 주요 교역 상대국의 환율 변화를 고려한 실효환율 기준으로는 2015년에 오히려 전년 대비 1.6% 가치가 상승했다.


향후 원-달러, 원-엔 환율보다 더 위협적이지만 관심에서 비껴나 있는 것이 ‘달러 당 7위안 이상으로 위안화 절하’가 몰고 올 파괴력이다. 현재 중국 정부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위안화 가치는 낮아질 가능성이 큰 것으로 관측된다. 단기적으로 원과 위안이 강한 동조화를 보이기도 하지만 단절적인 변화 앞에서는 수준이 크게 바뀌게 마련이다. 2000년대 중반 위안당 120원에서 2010년 이후에는 줄곧 170~180원 수준을 유지해왔다. ‘달러당 7위안 이상’ 우려가 현실화돼 중국의 업그레이드된 제품과 결합한다면 그 결과는 우리 산업계에 혹독한 시련이 될 것이다. 원고-위안저는 2000년대 중반 원고-엔저 당시의 고생과는 차원이 다를 확률이 높다. 동아시아 제조업의 중심축이 일본-한국-대만에서 중국의 전방위적 추격으로 이제 한국-중국-베트남으로 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유가와 관련해 추가적인 경기악화 여지는 크지 않을 전망이다. 일부에서는 유가 반등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유가가 더 하락한다 해도 1월과 같은 급락세만 아니라면 그에 따른 경기 악화는 완화될 전망이다. 디플레이션 기대가 약화되면서 지연된 소비와 투자가 어느 정도 재개될 수 있는데다 채굴기술이 현재의 가격에 적응하면서 셰일오일 등 채굴 관련 투자 급락세의 완화가 예상된다.


반면에 환율 사정은 만만치 않다. 미국의 추가 금리인상 가능성이 작아지는 터에 일본의 과감한 통화정책으로 국제 금융시장이 안정을 찾아나간다면 원화의 강세 전환 가능성이 커진다. 중국 경제의 불안정성이 증폭되면서 원화 가치가 상당 폭 하락할 수도 있겠지만 이 경우 한국 경제가 치러야 할 비용은 원화 약세의 이익보다 훨씬 클 것이다. 환율 전쟁은 특히나 버거운 싸움이다. 각국이 통화 완화를 통해 국가간 소득 재분배를 다투는 싸움에서 국제통화국이 아닌 우리는 당장 쓸 무기가 거의 없다. 자본유출 등의 잠재 리스크 때문에 유럽이나 일본처럼 맘놓고 돈을 풀 수도 없는 입장이다. 창의적이고도 적극적인 정책대응이 요구되고 있다.


신민영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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