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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연애소설] 판게아 - 롱고롱고의 노래<25>레벨업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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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 눈에 숫자와 비밀을 담는 데 성공하다

함께 레벨업 한 마루와 사비의 재치로
폴리페서의 물안경을 벗겨내고
텅 빈 동공으로 악을 쓰는 그 앞에
네피림의 눈이 나타나 숫자를 요구하는데

폴리페서와 그의 말 잘 듣는 누이들이 어느새 바짝 추격해오고 있었다.

“아빠, 난 이 비밀을 다 외울 수 없을 것 같아요.”

다급해진 수리가 아빠에게 외쳤다.

“수리야, 마음의 눈을 떠봐.”

수리는 멍한 표정으로 아빠를 쳐다보기만 했다.

“너의 이름이 뭐지?”

“…제 이름은 수리요, 수리.”

“아니 처음부터 제대로 말해야지. 다시 말해봐.”

머뭇거리던 수리는 사비를, 마루를, 골리 쌤을 차례대로 쳐다보았다. 모두 초조한 눈치였다.

“수리야. 힘내!”

“마음의 눈을 떠!”

또 그 목소리가 들렸다. 수많은 소리가 수리의 귓전을 홀렸다. 수리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수리의 눈 앞에 그동안 만났던 모든 것들이 지나갔다.

작은 강아지들·노란 집·붉은머리 거인·펠림프세스트·네피림·누이·올름·황금산 레뮤리아·빨간 외로운 외투·나비·폴더·리키니우스. 모두가 빠르게 지나갔다. 그중 네피림의 눈과 누이가 차례대로 수리에게 달려들었다. 수리는 ‘아악’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그 비명은 공포와 두려움의 소리가 아닌 전혀 뜻밖의 소리였다.

“난 수리, 독수리야!!”

순간 침묵이 흘렀다. 수리는 진정한 자신의 이름을 말해버렸다.

“난 레벨업 할 수 있어.”

이름: 3단계 수리 Level Ⅲ Suri
클래스: 각성 마스터 Awaken Master
연식: 16세
성별: 남자
신장과 체중: 170㎝ 60㎏
장비: 스톤엑스 Ston Exe, Wing
성향: 오만, 허세, 인텔리전스, 지혜의 눈

윙윙 탁탁 윙윙 탁탁 62%
윙윙 탁탁 82% 윙윙 탁탁 99%

수리님의 데이터 로드 100% 완료되었습니다.
네, 장착 완료했습니다.

순간 붕 떠오른 수리의 머리에 촘촘히 박혀있던 숫자들이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듯 발광하기 시작했다. 수리의 주변으로 아우라가 뿜어져 나왔다. 수리 아빠는 수리를 자랑스럽게 바라보았다.

“수리야, 수리야. 나의 아들.”

사비와 마루가 수리 아래에 섰다. 수리의 아우라가 두 사람을 완벽하게 감싸주었다.

“나도 레벨업.”

“나도 레벨업.”

마루 아빠는 눈물을 훔쳤다.

“마루는 태어날 때 5.1㎏이었어. 그런데 이렇게 똑똑하게 자라다니.”

“5.1㎏이요? 사람으로 태어난 게 맞습니까?”

사비 아빠가 뼈 있는 농담을 날렸다.

“우리 수리는 불과 2.6㎏이었습니다. 그렇게 작은 아이였지만 자신의 운명을 이미 알고 있는 듯했습니다. 어려서부터 낙천적이고, 마냥 긍정적이었죠.”

이번에도 사비 아빠였다.

“긍정적인 것과 자신의 운명을 깨닫는 것, 도대체 무슨 상관이죠?”

마루 아빠와 수리 아빠가 동시에 사비 아빠를 째려보았다.

“이 아이들에게 인류의 미래가 달려있습니다. 인류는 다르게 진화할 수도 있으니까.”

수리 아빠는 점잖게 말했다.

모나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이럴 시간 없습니다. 자식 자랑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폴리페서 일당이 거의 다가왔습니다.”

수리 아빠는 혀를 끌끌 찼다.

“사이비들의 세상이 되려나? 이게 진화의 방향이라면 어쩔 수 없고….”

그 사이 수리는 점점 더 높이높이 날아올랐다. 마치 비행기가 단계별로 고도를 높이듯 그렇게 높아져 갔다. 저 먼 하늘까지 날아올랐다.

수리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모든 것이 뚜렷이 보였다. 숫자들 옆에 분명하게 드러나 있는 의미도 뚜렷이 보였다.

수리는 그 숫자들과 의미들을 자신의 눈 속에 꼭꼭 담았다. 바로 독수리의 눈이었다. 독! 수! 리! 눈!

폴리페서·누이 일당과의 싸움

폴리페서와 누이들은 모나와 피스솔저들과 싸우고 있었다. 폴리페서와 누이들은 피스솔저들의 귀를 뚝뚝 잘랐다. 잔인했다.

“나비의 노래를 들었던 귀다. 모두 잘라라.”

모나는 귀가 잘린 채 쓰러져 가는 동료들을 보며 분노했다.

“우리의 급소를 알고 있다니… 노래의 신이 너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아니 그 전에 내가 널 없애버릴 것이다.”

모나는 폴리페서를 죽이려고 신들린 듯 공격했다. 그러나 폴리페서의 망원경 같은 우스꽝스러운 물안경은 용케도 적의 공격을 금방 알아챘다. 물안경은 폴리페서의 방패나 마찬가지였다. 폴리페서를 잡으려면 그의 물안경을 벗겨야 했다.

사비도 여전사의 기세로 주먹을 불끈 쥐고 큰 소리로 외쳤다.

“누이들은 모르는 것 같아. 폴리페서에게 이용당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리지? 알려서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지. 우리가 구해줘야지. 그러나 저 덩치들을 무조건 힘으로 상대한다는 건 현명하지 않아.”

느닷없이 마루가 ‘와아아’ 달려나갔다. 꼴이 장난스러웠다.

“나한테 맡겨.”

달려나간 마루는 모나와 싸우고 있는 폴리페서의 안경을 빼앗기 위해 손과 발로 그를 마구 때렸다. 짧은 팔다리는 춤추듯 훌렁훌렁했다.

“레벨업 된 거 맞아? 마루야, 허우적대냐?”

사비는 마루에게 소리쳤다.

“마루야. 너의 능력을 찾아내봐, 너의 잠재능력을 말이야.”

사비가 고래고래 소리질렀다.

마루는 뒷걸음쳤다. 몇 걸음 물러났다. 그러더니 점점 몸뚱이가 퉁퉁 불어나더니 곰만한 돼지가 되었다. 그 몸뚱이를 돌돌 말았다. 금세 바윗덩어리가 되었다. 다짜고짜 폴리페서 쪽으로 ‘다다다’ 밀고 나갔다. ‘쿵’ 소리와 함께 마루와 폴리페서가 정면 충돌했다. 폴리페서는 뒤로 홀라당 자빠졌다. 그 순간 사비가 잽싸게 나타나 폴리페서의 안경을 휙 벗겼다.

“아악 아아악!”

폴리페서는 자지러지는 비명을 질러댔다. 폴리페서의 동공은 텅 비어있었다. 폴리페서는 악을 썼다.

“난 그걸 봤어! 그걸 봤다고!”

“그럼 비밀을 말해봐. 그 기호의 비밀을 말해보란 말이야.”

“난 그건 모른다. 기호만 알 뿐이지. 그 비밀을 알기 위해 수리와 너희들을 쫓은 거다.”

그때 하늘이 열리며 네피림의 눈이 나타났다.

“숫자를 가져와라.”

네피림은 수리를 찾고 있었다. 어느새 수리는 네피림의 눈 앞에 도착했다.

“내 눈 속에 있어.”

네피림은 눈을 크게 깜빡였다.

“나비를 돌려주고 아빠를 풀어주면 내 눈 속에 저장된 비밀을 보여주겠어.”

“그동안 네피림은 보지 못한 거야?”

사비는 어이가 없었다.

“이 땅은 힐라 몬스터라고! 네피림은 볼 수가 없어.”

수리가 천천히 읊조렸다.

“어, 썸이 없어졌어, 썸!!”

골리 쌤은 어쩔 줄 몰라 했다.

“엇, 볼트도 없어졌어. 볼트.”

마루와 사비는 사색이 되었다.

“어린아이가 어디로 간 거지?”

수리·사비·마루 아빠는 몹시 허둥댔다.

“바위 밑으로 다시 들어가 계세요. 폴리페서가 죽일지도 몰라요. 어서요.”

마루가 소리치자 수리 아빠는 마루와 사비 아빠가 있는 곳으로 피신했다.

또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월의 훈풍과도 같은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그 비밀은 아무도 볼 수 없어. ? 오직 수리만 볼 수 있지.”

목소리는 사라졌다.

갑자기 어디선가 비명이 들려왔다. 그리고 폴리페서가 달려왔다.

“아아앗! 네 눈알을 빼버리겠다. 비밀을 빼버리겠다.”

폴리페서였다. 어디 숨어있다가 나타났는지 좀 전보다 기세가 등등했다. 폴리페서는 무작정 수리의 머리통 속으로 들어가려는 듯 보였다. ‘쿵쿵쿵쿵’. 무서웠다. 그의 탐욕이 정말 무서웠다.

“악.”

골리 쌤은 기절할 듯 주저앉았다. 그 순간, 바람과 함께 홀연히 나비 어머니가 나타났다. 라푼젤 만큼이나 긴 흰색의 머리칼을 가진 그녀가 나타났다.

그녀가 가져온 바람은 지상의 모든 그림들을 깨끗이 지웠다. 그리고 수리를 사뿐히 들어 올렸다.

“불쌍한 누이들. 너희들은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너희들이 태어난 고향을 그리워하며, 그저 쳐다만 보며 살게 될 것이다. 먼 하늘을 보게 될 것이다. 텅 빈 눈으로.”

나비 어머니는 사라졌다.

“너희들은 기계일 뿐이야. 너희들만 모를 뿐이지.”

자빠져있던 폴리페서가 겨우 일어서며 비아냥거렸다.

“헛소리 지껄이지 마. 우리들은 생명체야.”

마루가 버럭했다.

“너희들이 떠나온 곳, 이스터 섬을 생각해 봐. 그 거인 석상들이 먼 옛날 생명체였을까? 기계였을까?”

모두 긴장한 채 침만 삼켰다.

“그럼 네피림이 진짜 감추려는 게 뭐지?”

수리가 물었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네피림에게 물어야지. 바보들.”

폴리페서는 징그러울 정도로 오만했다. 사비가 따져 물었다.

“참고로 말하자면, 난 바보가 아니야. 너희는 언제 떠나온 거야?”

“우린 오래 전, 뜨거운 땅을 떠났지. 그리고 레뮤리아에 오게 되었지. 이 땅은 모두의 시초가 되는 땅이다.”

마루가 배꼽을 잡고 웃었다.

“우하하. 그럼 너는 뭐야?”

“바로 너희들의 처음이지.”

수리가 폴리페서에게 준엄하게 물었다.

“우리들의 처음이라면 너희들이 언제 떠나왔는지, 왜 떠나왔는지 말해 줄 수 있을 텐데?”

“난 어떤 것도 말해 줄 수 없다. 이 바보들. 날 죽여라!”

수리가 앞으로 나섰다. 그 모습은 누구보다 당당했다.

“아니, 우리는 누구도 죽이지 않아.”

수리는 계속했다.

“우리는 롱고롱고의 비밀을 알아내려 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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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윤 시인·소설가.
판게아 시리즈 1권 시발바를 찾아서, 2권 마추픽추의 비밀, 3권 플래닛 아틀란티스를 썼다. 소년중앙에 연재하는 ‘롱고롱고의 노래’는 판게아 4번째 시리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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