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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 “민주당 때 경제 호전” 샌더스 “0.1%가 90% 부 가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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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4호 7 면

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29일(현지시간) 아이오와주 데븐포트 유세장에서 연설하고 있다. 데븐포트=채병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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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현지시간)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유세장에서 차로 5분 거리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유세장. 아이오와주 데븐포트에 있는 낡은 건물 2층인 유세장의 강당 벽에 걸린 시계는 고장 난 채 9시45분에 멈춰 있고, 화려한 실내조명이 빛났던 클린턴 전 장관 유세장만큼 밝지도 않다.


그러나 샌더스 의원이 등장하자 홀을 메운 젊은이들은 발을 구르고 “버니, 버니”를 외치며 귀청이 울리는 한 시간이 계속됐다. 샌더스 의원이 “여러분 과격한(radical) 것을 원하는가”라고 묻자 젊은이들은 “예에”라고 함성을 내지른다. 샌더스 의원은 “미국 내 상위 1%의 10분의 1이 나머지 90%의 부만큼을 갖고 있다”며 “월마트 직원들은 임금이 부족해 사회보장을 받는 이들까지 있는데 여러분이 내는 세금이 억만장자인 월마트 소유주 가족들에게 간다”고 외쳤다.


그는 “언제까지 젊은이들이 두세 가지 일을 동시에 해야 먹고사는가”라며 “이대로는 안 된다!(enough is enough!)”고 소리쳤다. 또 유세장을 뒤흔드는 청중들의 함성이 계속됐다.


유세 후 만난 청년 마커스 핸드릭스(20)는 “나는 원래 공화당 쪽인데 유명한 사람이 온다고 해서 왔다”며 “연설을 들으니 몸이 개운하다(refreshing)”고 했다. 의대생이라는 캐서린 배스(24)는 “힐러리는 오염된 워싱턴 정치판에만 머물면서 정책까지 오락가락했다”며 “버니는 정치가 아닌 우리의 현실을 얘기한다”고 했다. 이날 “이제 정치 혁명에 나서자”고 외친 샌더스 유세 현장의 열기는 기성 질서에 비판적인 젊은 세대의 열기로 과거 한국의 노무현 바람과 닮은꼴이었다.


클린턴 전 장관과 샌더스 의원의 각축은 세대 간 대결이자 조직 대 바람의 대결이다.이날 아이오와주 디모인에서 만난 공화당의 한 공보 담당 당직자는 “민주당은 클린턴 전 장관 캠프에 맞춰 움직이고 있다”며 “그런데도 샌더스 의원이 부상하는 게 흥밋거리”라고 했다. 아이오와주 여론조사는 두 사람의 각축전으로 나온다. NBC방송·월스트리트저널이 28일 공개한 아이오와주 여론조사에선 클린턴 전 장관이 48%로 샌더스 의원의 45%를 앞서지만, 22일 CNN·ORC 조사에선 샌더스 의원이 8%포인트를 앞섰다.


28일 아이오와주 디모인에서 샌더스 의원과 함께 또 다른 아웃사이더를 대표하는 공화당 트럼프의 ‘근육질 연설’이 이어졌다. 트럼프는 이날 폭스뉴스가 주최하는 공화당 후보 TV토론회에 불참하는 대신 참전용사를 후원하는 독자 행사를 급조했다. 그런데도 트럼프 신도나 다름없는 지지자들로 행사장인 드레이크대의 강당 1·2층이 모두 꽉 찼다. 강당 곳곳엔 트럼프의 선거 슬로건인 ‘미국을 다시 강하게’라고 쓰인 빨간 모자를 쓴 지지자들이 자리했다. 행사장 바깥에선 비표를 받지 못해 입장하지 못한 이들이 ‘트럼프’라고 적힌 팻말을 든 채 연호를 계속했다. 반면 트럼프가 불참한 TV토론회 시청률은 8.4%로, 지난해 8월 같은 방송사가 주관했던 첫 공화당 TV토론회의 시청률 15.9%에 비해 반 토막이 났다.


“차기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라는 사회자의 안내 방송 속에 트럼프가 행사장에 입장하자 청중들은 일제히 일어나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연설에 나선 트럼프가 TV토론회보다 자신의 행사에 언론이 더 몰렸다며 “여기 와 있는 (언론사) 카메라를 보라. 이곳이 아카데미 시상식장”이라고 자랑하자 함성이 이어졌다. 트럼프의 연설 중간 트럼프를 비판하는 구호를 외쳤던 반전단체 회원들도 있었지만 이들은 “꺼져버려(Out)”라는 청중들의 고함 속에 쫓겨나갔다. 트럼프는 이런 청중들을 향해 “불법 이민자들이 우리 참전용사들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고 있다”며 “더는 이런 일이 없게 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행사장을 빠져나가던 슈밋 탐스는 “오바마가 있는 동안 이 나라에서 통제가 사라졌다”며 “트럼프는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다”고 칭찬했다.


트럼프의 뒤를 좇는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은 경선 전날까지 아이오와주 데븐포트·매리언 등에 있는 교회를 돈다. 교회 순방 유세가 그의 막판 일정이다. 크루즈는 그간 유세장에서마다 성경을 인용하며 보수 기독교 표심 잡기에 집중했다. 아이오와주는 2008년 경선 때 언론사의 출구조사에서 응답자의 57%가 자신들을 ‘복음주의자’로 밝혔을 정도로 종교적 영향력이 강한 곳이다. 크루즈 의원은 아버지가 쿠바 출신으로 미국에 유학생으로 들어왔다가 정착한 뒤 순회 전도사로 활동했던 가족사도 내세운다. 크루즈 의원은 27일엔 디모인에서 보수 기독교계가 중요하게 여기는 낙태 반대를 위한 독자 행사를 개최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세 차례 결혼한 트럼프를 겨냥해 “언제 트럼프가 결혼을 지켰나, 언제 트럼프가 신앙의 자유를 지켰나”라며 거듭 비판했다. 아이오와주 여론조사에서 박빙의 우세를 이어왔던 크루즈 의원은 NBC·월스트리트저널 여론조사에서 32%를 얻은 트럼프에 7%포인트로 밀리자 ‘신심 공세’를 더 강화했다.


두 사람의 경쟁을 지켜보며 후일을 도모하는 게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이다. 공화당 지도부의 지지를 받는 루비오 상원의원은 “어제의 후보는 지나갔다”며 차세대 보수의 대표 주자를 자임한다. 미국 정가에선 크루즈 의원의 세가 꺾일 경우 트럼프를 견제할 대안 주자는 루비오 의원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28일 클린턴 전 장관의 유세 현장에선 만난 한 민주당원은 “트럼프는 결코 공화당 후보가 되지 못한다”고 한 뒤 갑자기 귓속말을 하며 “루비오가 공화당 후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자들이 아이오와주에 전력투구하는 이유는 첫 경선이라 이곳의 승패가 향후 대선 일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1992년부터 2012년까지 여섯 차례의 경선에서 아이오와주의 민주당·공화당 승자가 대부분 각 당의 대선 후보가 됐다. 예외는 민주당에선 한 차례, 공화당에선 두 차례에 불과했다.


디모인(아이오와주)=채병건 특파원?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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