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근육 늘어지게 마비시키는 보톡스 조만간 미국으로 역수출합니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64호 12면

최정동 기자

상품명 ‘보톡스’로 널리 알려진 ‘보툴리눔 독소’는 주름 제거 시술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1991년 미국에서 본격 상품화됐고 2006년부터는 국내 기업인 메디톡스에서도 생산·판매하고 있다. 국내시장의 40%를 점유하는 메디톡스는 2014년 기준으로 총매출 759억원에 영업이익이 600억원에 이를 정도로 급성장했다. 지난 연말 ‘올해의 무역인상’을 수상한 이 회사 정현호(53·사진) 사장을 지난 22일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서 만났다. 대학교수에서 기업가로 변신한 정 사장은 기술력에 대해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차세대 제품을 개발했고 조만간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도 역수출할 예정”이라며 “지난해 900억원(시장 추산 규모) 매출에 이어 올해는 1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정 사장은 대학교수 출신답게 보툴리눔 독소의 작용 원리 등을 차분하게 하나하나 설명했다.

-지난해 말 ‘올해 무역인상’을 수상했는데 어떤 상인가.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무역협회 등이 주관해서 매달 기업인 중 한 명에게 주는 ‘이달의 무역인상’을 지난해 5월에 받았다. 연말엔 그 12명 중 한 명에게만 주는 ‘올해의 무역인상’을 수상했다. 바이오기업 중에서는 메디톡스가 처음인 것으로 알고 있다. 매출의 50%를 수출이 차지하는 점을 인정받은 게 아닌가 생각된다.”


-메디톡스의 경쟁력은 어디에 있나. “‘보톡스’로 유명한 미국 엘러간을 비롯해 국내외 여러 기업이 같은 보툴리눔 독소를 제품으로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메디톡스는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갖고 있다. 창업 초기부터 우리는 최대 시장인 미국 시장 진출을 염두에 두고 제품을 개발해왔다. 비(非)동물성 세균 배양 배지를 사용하고 분말형 대신 사용이 간편한 액상형 제품을 개발한다는 목표를 세워 결국 달성했다. 동물성 배지에는 돼지고기 성분이 들어가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사용하기 곤란하다.”


-보툴리눔 독소란 어떤 것인가. “클로스트리디움 보툴리눔이란 세균이 만드는 근육을 마비시키는 신경독이다. 이 독소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생물학적 무기로 개발되던 것이다. 1g으로 100만 명까지 살상할 수 있는 맹독물질이다. 근육을 움직이려면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이 필요한데 보툴리눔 독소는 아세틸콜린의 분비를 방해한다. 보툴리눔 독소를 사용하면 근육의 과도한 수축으로 인한 질환을 치료할 수 있다. 1970년대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앨런 스콧이란 안과의사가 처음 사시 치료에 이용했다. 사시는 안구가 의사에 반해 다른 곳으로 쏠리는 현상이다. 근육 하나가 마비됐기 때문이다. 보툴리눔 독소는 근육을 늘어지게 하는 방식으로 마비시킨다.”


-보톡스가 주름 제거 등 미용치료에 사용되게 된 계기는. “미국 엘러간은 원래 안과전문 치료제 회사였다. 앨런 스콧의 회사를 사들인 것도 사시치료제를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초기에는 보톡스 매출이 크지 않았다. 그런데 사시 치료를 받은 환자 중 나이 든 사람들이 다시 찾아와 주사를 요구했다. 주름이 펴지고 젊어 보인다는 것이었다. 이를 알게 된 캐나다 피부과 의사인 진 카러더스가 주름 제거 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뇌성마비·편두통·과민성방광·이갈이·우울증 등 다양한 질환 치료에 사용된다. 독소가 신경에 작용하기 때문이고 신경은 온몸에 존재한다.”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보톡스 관련 안내서를 배포하기도 했는데 부작용 우려는 없나. “치사량은 마이크로그램(㎍·1㎍=100만분의 1g) 단위다. 보톡스 한 병에는 5ng(나노그램·1ng=10억분의 1g) 수준이다. 체중 60㎏ 성인이 200병을 한꺼번에 맞아야 50%가 사망할 확률에 이르는 양이 된다. 한두 병으로는 문제가 안 된다. 의사의 경험이 중요하다. 잘못 시술하면 엉뚱한 곳이 마비되는 부작용이 있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독소의 반감기가 3개월 정도여서 다시 회복된다. 6개월마다 다시 주름 개선 주사를 맞아야 하는 이유다. 문제는 내성이다. 독소 단백질에 대한 항체가 생기면 효과가 없어진다. 뇌성마비 치료 등 주사량이 많은 경우 주의해야 한다. 독소에는 활성단백질과 주변 부속단백질이 함께 있는데 메디톡스에서는 활성단백질만 순수하게 분리한 제품도 개발했다. 내성을 줄이기 위해서다.”


-액상 제품을 최초로 생산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보툴리눔 독소는 단백질이다. 보통 분말 상태로 유통되고 주사 직전에 액체로 만들어 주사한다. 단백질은 액상에서 안정된 상태로 유지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정된 액상 주사제를 만들려면 알부민을 첨가한다. 알부민은 사람 혈청에서 얻는데 인간 혈청을 모을 때 에이즈 등을 옮길 우려가 있다. 우리가 개발한 액상형 보툴리눔 제품은 알부민 없이도 3년간 안정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엘러간에서 적극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2013년 9월 메디톡스는 엘러간과 3억6200만 달러(약 4366억원) 규모의 액상형 제품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엘러간 측이 전 세계에 우리 제품을 공급하게 된다.”


-직접 수출하지 않고 엘러간을 통해 수출하기로 한 이유는. “일본·태국·브라질 등에 수출하고 있다. 하지만 직접 해외 수출에 나서면 자체 판매망을 갖춰야 하고 해당 국가가 요구하는 임상시험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많은 시간과 천문학적인 예산이 들어간다. 엘러간의 전 세계 점유율은 80%가 넘는다. 시장에 빨리 가기 위해 엘러간과 손잡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보툴리눔 독소 제품 개발에 나서게 된 계기는. “KAIST(한국과학기술원)에서 분자생물학 석·박사학위를 받았는데 지도교수가 양규환 교수였다. 양 교수가 70년대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때 보툴리눔 균주 샘플을 갖고 왔다. 당시에는 그게 관행이었다. 내가 박사 과정 때 그 균을 논문 주제로 연구하겠다고 하자 흔쾌히 허락하셨다. 선문대 교수로 있던 2000년에 메디톡스를 창립하게 됐다. 2006년 제품이 시판된 후 정신 없이 바빠졌다. 강의를 제대로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주변에서 반대를 많이 했지만 2007년 교수직을 그만뒀다.”


-제품이 시판된 것은 2006년인데 시간이 많이 걸린 이유는. “2004년엔 관련 법규도 갖춰져 있지 않아 담당 공무원과 함께 바로잡는 데 시간이 걸렸다. 시판 허가가 나올 때까지 자금 문제가 가장 어려웠다. 6년 동안 투자만 계속해야 했기 때문이다. 원료물질에 대해 가장 잘 안다는 자부심 하나로 버텼다. 자신이 있었고 한 번도 실패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국내 바이오산업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은. “국내 바이오산업은 복제약품을 생산하는 바이오시밀러 산업 비중이 크다. 장치산업이고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산업이다. 만일 중국이 더 큰 규모로 진입해 단가 경쟁을 한다면 밀릴 수밖에 없다. 국내 바이오산업이 길게 성공하려면 독창적이고 독보적인 기술을 갖고 있어야 한다. 바이오산업은 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하지만 일단 성공하면 부가가치가 엄청난 사업이다. 한국 사람들은 자질이 뛰어나기 때문에 정부가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기초과학 투자를 한다면 10~20년 뒤엔 분명히 보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kang.chansu@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