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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포스코 30년…'산업의 쌀' 일군 1500도 용광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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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2일 오전 11시30분, 포항제철소 제1 고로(용광로). 쇳물 온도를 나타내는 온도계에 '1482'라는 빨간색 숫자가 새겨졌다. 비상이다. 적어도 '1490' 이상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종합운전실에 있던 제선부 정철호 반장은 급히 조치를 취한다. 미분탄(쇳물 온도를 올려주는 석탄가루)의 양을 15t에서 15.5t으로 늘렸다.

"미분탄을 0.5t 더 넣으면 쇳물 온도는 10도 가량 올라갑니다." 정반장의 말이다. 그의 말대로 쇳물 온도계기는 5분도 안돼 '1490'을 넘어섰다.

쇳물 온도는 1천4백90~1천5백10도가 적정이다. 정반장은 "1천4백90도보다 낮으면 쇳물에 불순물이 많아지고, 1천5백10도보다 높으면 연료가 많이 들어가 비경제적"이라고 설명했다.

*** 탄생 첫 쇳물 흐르자 "만세" 함성

1 고로.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근대적 제철시설로 철광석을 녹여 쇳물이 처음 나온 곳이다. 전에는 고철을 녹여 쇳물을 만들었다.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1973년 6월 9일 오전 6시. 박태준 포항제철 사장은 용광로 위쪽에서 직원들과 긴장된 표정으로 출선구(쇳물이 나오는 곳)를 지켜보고 있었다. 철강을 만들기에 앞서 쇳물부터 제대로 나오는지 알아보는 작업이다. 성공이냐, 실패냐….

1시간 안에 쏟아져야 할 쇳물은 오전 7시가 넘어서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30분이 더 지났다.아마 朴사장에게는 30년과 같았을 긴 시간이었다.

7시30분. 꾸물꾸물 벌건 액체가 꿀물처럼 출선구 입구를 적시기 시작했다. 쇳물이었다. 朴사장과 직원들은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만세~."

쇳물이 처음 나온 이날은 '철의 날'이다. 그러나 진정한 철강의 날은 7월 3일. 용광로에서 만들어진 쇳물(제선작업)에 불순물을 없앤 뒤(제강작업) 자동차.선박.가전제품에 쓰이도록 다지는(압연작업) 3단계를 거쳐야 비로소 철강제품이 탄생하는 것이다. 이날은 바로 1고로.1제강공장.1열연(압연 중 하나)공장의 3단계 1기 설비가 국내 최초로 준공된 날이다.

'산업의 쌀'인 철강을 만드는 포스코는 우리나라 산업 발전의 원동력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성장 작년 매출 12兆 … 287배 늘어

"준공 직전이었던 73년 6월, 박태준 사장님에게서 이색적인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1고로 직원들은 안전모에 붉은 페인트를 칠하라'고요."

당시 신입사원이었던 유진하(현 제선부 조업지원팀 리더)씨의 기억이다. 1백80명의 1고로 직원들은 모두 각자의 안전모를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죽죽 붉은 페인트칠을 하기 시작한다. 이 붉은 안전모는 곧 '프리패스'를 의미했다. 즉 다른 부서 직원들은 '붉은 안전모들'에게 우선적으로 무조건 협조해야 한다는 것.

朴사장의 지시는 1고로 준공이 지연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실패하면 조상들의 피의 대가를 헛되이 하게 된다." 朴사장의 신념이었다. 유씨는 "빨간 안전모를 쓴 1고로 직원들은 모두 죄인된 입장에서 공기를 맞추려고 엄청나게 일했다"고 회고했다.

공장 가동 초기 직원들은 외국 기업의 제철소 설계도면에 의존했다."그때를 생각하면 배짱도 대단했어요. 당시 외국 기업이 포철에 상주했어요. 그런데 이들은 우리에게 기술을 전수해주지 않고 도통 모른 척만 하는 거예요. 그래서 안되겠다 싶어 설계도면을 어깨너머로 훔쳐봤죠."

포철 한 관계자의 증언이다. 포스코는 세계 최고의 철강회사로 성장했다. 지난해 말 매출액 11조7천억원, 순이익 1조1천억원은 30년 전과 비교해 각각 2백87배, 2백39배 늘어난 수치다.

*** 勞使 "쇳물 굳을라" 파업 한번 안해

만약 파업으로 용광로가 막히면 어떻게 될까. 최근 파업이 경제를 뒤흔들고 있어 한번 의문을 던져봤다. "그러면 나라 경제가 막히는 것"이라고 유진하씨는 대답했다. 파업으로 쇳물이 굳어버리면 기존 용광로를 부수고 새로 지어야 한다. 비용은 개당 3천억원이고 건설 기한도 수개월이 걸린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자동차.배.가전제품 등 우리가 필요한 제품을 전혀 만들지 못한다는 점이다. 때문에 피해 규모는 가늠할 수 없을 정도다. 다행히 포스코는 파업한 적이 없다.

지금도 노경협의회를 통해 노사 협조가 잘되고 있다. 이날 저녁, 서울 여의도의 세배가 넘는 포철공장을 뒤로 하고 나설 때 이곳에서 30년간 근무한 노장 근로자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했다. "배 고팠고 밤새기를 밥먹듯 했던 그 어려웠던 30년 전… 요즘 젊은이들 알아주기나 할까요?"

정선구 기자

<포스코 연혁>

▶68년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 설립

▶73년 국내 최초 1기 설비 준공(1고로.1제강공장.1열연공장)

▶81년 포항제철소 종합 준공

▶92년 광양제철소 종합 준공

▶94년 뉴욕증시 상장

▶2000년 민영화 완료

▶2002년 포철에서 포스코로 사명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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