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제재 미적대는 사이 미사일 꺼내든 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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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외교가 위기다. 북한이 4차 핵실험(1월 6일)을 한 지 29일로 24일째지만 대북제재는 물론이고 대중국 외교가 꽉 막혀 있다.

중국, 대북 압박 제 역할 못해
4차 핵실험 24일째 속수무책
북, 한·미·중 틈새 파고들어
“미사일까지 추가 도발 땐
한국, 대북정책 틀 재검토를”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 발사라는 ‘세트 도발’까지 만지작거리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결의안은 아직 윤곽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안보리는 2006년 10월 1차 핵실험 땐 5일 만에 결의안 1718호를, 2009년 5월 2차 핵실험 땐 18일 만에 결의안 1874호를 채택했다. 3차 핵실험 때도 23일 만에 결의안이 나왔다.

이번에 유난히 진전 속도가 더딘 이유는 중국 때문이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27일 존 케리 미 국무장관과 회담을 한 뒤 “제재가 목적이 되어선 안 된다”며 “북핵 문제는 대화와 협상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선을 그었다.

중국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미국 주장에 대해선 “(북핵을 해결하려는 중국의 노력을) 터무니없이(無端) 추측하고 곡해하지 말라”고도 반박했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도입까지 거론하며 중국의 대북제재를 압박해온 한국 정부 입장에선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정부의 북핵 외교가 중국 레버리지(leverage·지렛대)를 잃고 표류하고 있다는 비판도 쏟아지고 있다.

문흥호 한양대 국제대학원장은 “한국은 중국이 받을 리 만무한 선택지만을 제시하면서 한국이 중국에 매달리는 듯한 모습이 연출되고 있다”고 말했다.

외교부 차관을 지낸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한·미 대 중국의 구도로 가는 건 북한이 원하는 바”라며 “유연성을 발휘해 중국과도 연합전선을 구축시켜 국제사회 대 북한의 구도로 가져가야 전략적으로 이롭다”고 조언했다.

문제는 중국을 움직일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오전 “한·미 간 긴밀한 공조를 바탕으로 중국의 건설적 협력을 견인하기 위해 다각적 노력을 다하겠다”고만 했다.

조준형 외교부 대변인도 오후 정례브리핑에서 “안보리 상임이사국이자 6자회담 당사국인 중국의 건설적 역할을 기대한다”며 “다각적 노력”을 언급했다. 그러나 ‘다각적 노력’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에 대해선 답하지 않았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케리 장관의 중국 방문 일정이 끝나는 대로 전화통화를 해 방중 결과를 공유할 예정이다. 핵실험 다음 날인 7일, 케리 장관의 방중 전인 24일에 이어 두 사람 간 전화통화는 이달에만 벌써 세 번째다.

그러나 한·중 외교는 북한이 핵실험을 한 이래 상대적으로 소원한 상태다. 왕이 부장과의 통화도 앞으로 예정된 게 없다고 외교부 당국자들은 전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2일 외교안보부처 업무보고 때 언급한 5자회담 역시 중국의 거부로 진전 기미가 없다.

윤 장관은 28일 토머스 섀넌 미 국무부 정무차관 지명자와 만나 케리 장관 방중 결과를 전해 들은 뒤 “6자회담 구조의 틀 내에서 5자를 비롯한 창의적이고 다양한 형태의 협의를 활성화해 나가자”고만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장거리 로켓(미사일)까지 발사하는 추가 도발을 할 경우 한국 외교의 기본 전략을 수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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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박인휘(국제관계학) 교수는 “대북정책 및 북핵 외교 전반에 있어서 재검토가 필요한 시기가 왔다”고 말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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