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들지 않은 엄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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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대중탕에서 목격한 일이다. 갑자기 물에 딘 것처럼 울기 시작한 아이를 안고 젊은 엄마가 탈의장으로 뛰어 나왔다. 만 두돌은 지났음직한 여자 아이가 눈물 콧물이 한데 범벅이 되어 악을 쓰고 있는 바람에 사람들은 옷을 벗다 말고 그곳으로 시선을 집중시켰다.
젊은 엄마는 우는 애를 마루에 던지다시피 내던지면서 『이 원수야, 날 죽이려 드는구나』한다. 아이만 없었다면 대학생처럼, 아니 고등학생처럼 앳된 얼굴일텐데 그런 상소리가 나오니 사람들은 다시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 점잖은 할머니가 사유를 물으니 며칠 전부터 설사를 해서 의사 말대로 보리차만 마시게 했더니 자나깨나 이렇게 울부짖어 못살겠다는 것이다. 잠시도 엄마를 떨어지지 않아 할 수 없이 목욕탕까지 데리고 왔으나 자꾸만 달라붙어 몸을 씻을 수 없어 마구 때려줬다는 것이다.
할머니는 진열장에서 요구르트 한병을 꺼내주며 의사가 뭐라고 하든 저 아이는 몹시 시장한 것 같으니 우선 우유대신 요구르트를 줘보라고 한다. 젊은 엄마는 만사가 다 귀찮다는 듯 자기일을 보고 있는 동안 그 아이는 요구르트를 한병 다 마셔버렸다. 아이는 울음을 완전히 그치고 만족스런 얼굴로 제 어머니에게 다가갔다.
좋은 엄마가 된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즉 아이 낳는 일이 아무리 어렵다해도 기르는 일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철 들지않은 여자가 엄마노릇하는 것을 보면 마치 화롯가에 다가서는 아기처럼 위태롭기 짝이 없다.
설사하는 아이를 목욕탕에 데리고 와 때려주는 엄마, 배가 고파서 우는지 아파서 우는지 분간 못하는 엄마가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일은 그 아이의 생명을 모독하는 일이라 하겠다.
그 젊은 엄마 밑에서 요행히 목숨을 부지하며 살아남는다 해도 그 아이의 성장과정은 결코 평탄할 수는 없으리라. 손가락이 다 자라기도 전에 피아노 앞에 앉아야하고 나이가 차기도전에 이런저런 과외공부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학교에 정식으로 들어가기 전에 모든 호기심과 감수성은 메마르고 사라지게 될 것이다. 대신 성적에 대한 공포와 공부에 대한 염증이 쌓이게 되겠지.
자라나는 아이는 선천적으로 자연에 대한 동경, 즉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욕구가 있다고 한다. 마치 신체적으로 비정상일때 이를 알리기 위해 열이 나는 것처럼 사람은 자연의 이치와 멀어질 때 그 본래의 위치로 돌아가려는 균형의 원리를 지키고자 한다.
어린이가 먼저 철들기 전에 젊은 엄마여, 철든 엄마가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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