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데타·내전·IS·경제난…‘아랍의 봄’은 신기루였다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에서 시작돼 중동·북아프리카로 확산된 반(反) 정부 시위를 뜻하는 ‘아랍의 봄’이 5주년을 맞았다.

30년 독재 무바라크 쫓아낸 이집트
군부 집권, 4만 명 체포 2500명 살해
5주년 시위 우려해 탐문·검거 열풍
카다피 없는 리비아 4대 세력 전쟁
시리아 북부 IS 근거지 돼 난민 속출

‘아랍의 봄’은 독재자들을 몰아내고 아랍에 민주주의를 정착시킬 것으로 기대됐으나 5주년의 성적표는 초라하다. 수십 년간 철권 통치한 독재자가 물러나며 나라가 사분오열돼 내란에 휩싸이거나 새로운 독재자가 들어서기도 했다.

기존 독재자가 정권을 유지한 국가들도 내란이나 시위에 시달리고 있다. 그나마 성공적이라는 튀니지도 경제 부진 등으로 정정이 불안하다.

　‘아랍의 봄’ 당시 민주화 성공 사례로 꼽혔던 이집트는 25일(현지시간) 혁명 5주년을 맞았다. 30년간 이집트를 지배한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의 퇴진 시위가 시작된 날이다.

시민들의 거센 시위로 무바라크는 2011년 2월 퇴진했다. 이후 무슬림형제단이 선거를 통해 정권을 잡았으나 2013년 압델 파타 알시시 현 대통령이 주도한 군부 쿠데타로 무너졌다.

　5년 전 민주화 운동의 성지인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는 군·경이 배치돼 시위를 원천 봉쇄했다. 군부 정권은 지난 15일부터 반정부 운동 단속에 나섰다. 광장 주변의 아파트 5000가구를 탐문 조사하고 반정부 인사들을 대대적으로 검거했다. SNS 검열도 이뤄졌다.

아랍인권연합의 가말 에이드 대표는 “현 정권의 인권 탄압은 무바라크 정권보다 더 심각하다”고 말했다. 휴먼라이츠워치·카네기평화연구소에 따르면 2013년 쿠데타 이후 최소 4만 명이 체포되고 2500여 명이 시위 진압과정에서 살해됐다.

　5년 전 시민 봉기로 독재자와 맞선 리비아·시리아·예멘·바레인은 내전으로 상황이 더 심각해졌거나 독재에 시달리고 있다.

리비아와 예멘은 독재자를 축출하는 데 성공했지만 이후 정부 수립 과정에서 내전에 빠졌다. 리비아는 42년간 독재를 펼친 무아마르 카다피가 2011년 시민군에 사살된 이후 단일 정부를 구성하지 못하고 있다.

수도 트리폴리에 거점을 둔 정부와 토브룩에 거점을 둔 정부가 서로 정통성을 주장하는 가운데 북부 해안에는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와 IS 연계세력인 알샤바브, 서부에는 투아레그 부족이 점령해 내전을 벌이고 있다.

바레인에선 시민 봉기가 정부와 사우디아라비아를 주축으로 한 수니파 국제연합군에 진압돼 실패로 끝나면서 독재 정권의 탄압이 계속되고 있다.

시리아에선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이 5년째 반군과 내전을 벌여 25만 명 이상이 희생됐다. 내전을 피해 시리아에서 탈출한 460만 명의 난민은 상당수 유럽으로 건너가 유럽 난민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다.

IS는 시리아 북부 라카를 근거지로 이라크 북부까지 점령하며 지구촌을 테러 공포에 떨게 하고 있다.

　튀니지는 2011년 시민혁명을 통해 23년간 독재를 이어온 지네 엘아비디네 벤알리 대통령을 퇴진시키고 2014년 민주 정부를 수립했다.

그러나 2015년 실업률이 15%를 넘어서는 등 경제난이 지속되면서 대규모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2011년 개헌을 통해 왕정에서 입헌군주제로 전환한 모로코도 경제난 탓에 정국이 불안하다.

　서정민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아랍 국가들은 서구가 인위적으로 국경을 긋고 식민통치한 뒤 50~60년 전에야 독립한 나라들이어서 국민 정체성이 없고 공동체 의식도 약하다”며 “‘아랍의 봄’ 이후 국가를 철권 통치한 독재자가 물러나며 힘의 공백이 생겨 혼란에 빠졌다”고 진단했다.

이어 “한국의 경우 1960년 4·19 혁명 이후 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까지 27년이 걸렸고, 유럽 국가들은 민주화에 200년 이상 걸리기도 했다”며 “민주화는 적지 않은 시행착오와 기간이 필요한 만큼 5년의 시간으로 ‘아랍의 봄’의 성공과 실패를 논하는 건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이기준 기자
foridealist@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