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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이성민 “이젠 인간미 손톱만큼도 없는 역 하고 싶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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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민은 ‘척하는’ 걸 극도로 낯간지러워 한다. 어쩌다 그가 진지한 표정을 한 사진이 찍히기라도 하면 “에이, 저 가식 덩어리 좀 보라”고 손사래를 치며 쑥스러워한다. [사진 전소윤(STUDIO 706)]

배우 이성민(48) 하면 인간미 넘치는 소시민의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의 대표작인 tvN 드라마 ‘미생’(2014)의 사람 좋고 책임감 넘치는 오 과장 역이 남긴 훈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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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소리’에서 줄곧 로봇과 함께 연기한 이성민은 “로봇이 살아 있는 존재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27일 개봉하는 영화 ‘로봇, 소리’의 해관은 그 이미지를 어느 정도 이어받은 역할이다. 딸 유주(채수빈)가 실종된 지 10년, 전자 통신으로 오가는 세상의 모든 소리를 기억하는 로봇 ‘소리’에게 마지막 기대를 걸고 딸을 찾아나서는 해관.

까칠한 아저씨인 해관이 소리와 아웅다웅하는 모습이 귀엽게 그려지다가도, 해관의 뜨거운 부성애와 소리가 일깨우는 인간애가 가슴 뜨겁게 다가온다.

주식 세계를 다룬 범죄 영화 ‘작전’(2009)으로 주목받은 이호재 감독의 두번째 영화인 ‘로봇, 소리’는 로봇 캐릭터가 비중 있게 나오는 최초의 한국영화이기도 하다.

로봇과 연기하는 기분이 어땠나.
“장면마다 소리가 어떤 식으로 목소리를 내고 해관과 어떻게 대사를 주고 받을지 짠 다음, 그에 맞춰 소리의 동작을 조종했다. 그러다 보니 연기에 생동감도 생기고, 소리가 애드리브를 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배우를 상대로 연기하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유주가 커가면서 아버지와 사이가 멀어진 것으로 나온다.
“일반적인 아버지와 딸이 그렇지 않나. 해관이 10년 가까이 딸을 찾는 데 매달리는 건, 실종되기 직전 딸과 심하게 싸웠기 때문이다. 미안한 마음 때문에 유주가 아직 살아 있을지 모른다는 가느다란 희망을 놓지 못하는 거지. 다행히 난 열여섯 살 난 딸과 여전히 가깝게 지내지만.”
실제 어떤 아빠인지 궁금하다.
“무뚝뚝한 아빠가 되지 않으려 많이 노력한다. 딸이 지금 한창 사춘기라 심하게 부딪칠 때도 있다. 그래서 얼마 전에 딸애한테 이렇게 말했다. ‘넌 지금 뼈도 커지고 뇌도 커지고 모든 게 변하니까 아주 힘들 거야. 헐크가 변신할 때 괴로워하는 것처럼. 근데 어른들도 나이를 먹으면 갱년기라는 변화를 겪어. 사춘기처럼 힘든 거야.’ 그 뒤로는 딸애가 욱하다가도 ‘미안’ 하면서 물러서더라(웃음).”
이성민 하면 ‘미생’의 오 과장처럼 인간미 넘치는 이미지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그런 인물을 연기할 때 제일 편하긴 하다. 나한테 그런 부분이 상대적으로 많은 것 같기도 하고. 인간미란 결국 보편성 아닐까. 내가 어떤 인물을 연기할 때도 거기서 출발한다. 변호사 역이라 하면 ‘가장 보통의 변호사는 어떤 모습일까’ 질문하는 거다. 변호사이기 이전에 한 가정의 가장이고, 누군가의 친구고, 평범한 동네 아저씨인 변호사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그래야 내가 연기하는 인물을 관객이 친근하게 느낄 수 있을 테니까. 반대로 인간미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꼴도 보기 싫은 인물도 연기해 보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된다.”
왜 안 되는 걸까.
“난 악역을 하려면 ‘공사(工事)’가 많이 필요한 것 같다. 외모와 상관없이 극 중 상황이 그 인물에 섬뜩함을 입히는 악역이라면 해 볼 만한데. 난 연기의 본질이 배우의 껍데기를 깨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극중 인물과 거리가 먼 배우가 그런 인물처럼 보이도록 뭔가를 해내는 게 바로 연기다. 그런 색다른 도전과 변신이 많아져야 한국 영화계의 연기가 풍요로워질 테고 말이다. 한데 요즘 한국영화는 대개 배우의 이미지를 소비한다. 이미지로만 하는 연기는 오래 못간다.”
코미디 ‘관능의 법칙’(2014), 액션 ‘빅매치’(2014), 판타지 공포 ‘손님’(2015) 등에서 다양한 연기를 보여주지 않았나.
“다 흥행이 안 됐다. 하하. 이제는 흥행하는 작품을 해보고 싶다(웃음).”

장성란 기자 hairp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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